이것은2013년3월3일 저녁8시 뉴욕 비버가(街) 16번지에서 있었던 대담의 녹취록이다.토론은2시간20분가량 이어졌고,길게 늘어진 탓에 편집이 되었다.몇몇 반복되거나 곁가지 논의는 생략되었지만 언급된 대부분의 내용은 그대로 적었다.토론은 참석한 모든 사람의 동의 하에 녹음되었으며 편집자는 여기에 기록된 대화 참여자 모두에게 연락하려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임이 공개 행사였기 때문에 모든 대화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고,그래서 이 녹취록에는8명의“익명의 참여자”가 등장한다.
페데리치: 그와 나란히 가는 생각이 좌파들이 여성들에게 ‘밖에 나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해방의 길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취업하라, 노조에 가입하라, 계급투쟁에 참여하라. 그것이 당신이 사회적 권력을 얻고, 노동계급의 일원이 되는 방법이다”라고 말이죠.
카펜치스: 맞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지난 40여 년 동안 저는 이 팸플릿에 대해 많은 성찰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팸플릿을 작성하고 인쇄하고 배포하는 일이 정치적 캠페인의 일부였음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소그룹의 사람들로 시작했고, 소그룹의 사람들로 끝마쳤습니다. [웃음] 그러나 그 사이에 우리는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이 요구를 외치는 무수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1976년 뉴욕시립대의 등록금 부과에 반대하는 투쟁의 일원이었습니다. 저 자신은 이 쟁점을 두고 대학과 협상했던 교수회(Professional Staff Congress)—뉴욕시립대 학부 교수노조—에 아주 화가 났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교수노조와 좌파 일반의 조치를 비판했습니다. 앞서 실비아가 말했듯이, 그들은 대학을 해방이 출현할 수 있는 매개체 정도로 보았죠. 그들은 대학 공장을 해방의 장소로 위치시켰지만 우리는 이제는 우리 자신을 이 공장과 분리시키고, 이 공장들에게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었죠.
저는 최근 제 동지들과 ‘학생 채무 점거 캠페인’과 ‘채무 파업’에서 했던 일 때문에 특히나 이 팸플릿에 관해 생각했던 바 있습니다. 현재라는 유리한 관점에서 보면 저는 우리가 이 투쟁에서 얼마나 멀리까지 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1970년대에는 ‘학생에게 임금을’을 위해 싸웠고, 지금은 채무 노예를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지난 40년간 학생들은 점점 더 막대한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착취당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 발전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미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에, 가령 게리 베커(Gary Becker) 같은 자본의 전략가는 현재의 의미대로 “신자유주의”가 쓰이기 전에 신자유주의 대학의 청사진을 그려내고 있었죠. 바로 이것이 『학생에게 임금을』에 기록된 것이며, 이 팸플릿이 현재에 기여하는 바 중 하나입니다. 지난 40년간 일어났던 일은 저 신자유주의 전략에서 기어나와 그것의 음울한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그래서 경제학에 “음울한 학문”이라는 저주를 퍼부은 토마스 칼라일의 말을 명시적으로 입증한 것— 단지 그뿐입니다.[각주:1]우리는 이 음울한 결론을 잘 알고 있습니다. … 우리가 모인 이곳을 둘러보니 여러분이 부채상환과 채무불이행이 무한정 이어지는 음울한 미래와 마주하고 있다는 확신을 제게 주는데요. 『학생에게 임금을』이 쓰일 당시 우리가 중단시키고 심지어 역전시킬 수 있다고 바랬던 것은 바로 이러한 유형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현재 작동하는 힘은 너무 강력합니다.
페데리치: 이제 여러분은 착취당하려고 돈을 지불해야 하죠. 여러분은 여러분이 당할 미래 착취를 위해서 훈련을 받는 특권에 대해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중 착취입니다.
카펜치스: 그래요, 그건 미친 짓이죠.
야콥센: 교육제도를 기본적으로 하나의 훈육 기계로 보는 비판을 계속 이어가 보죠. 교육을 노동계급이 신분 상승되는 수단이라거나 의식을 고양시키는 방식이라고 주장하는 대신, 당신들은 교육을 해방의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교육 체계에 대한 당신들의 비판은 훨씬 더 총체적인데, 교육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실제로는 쓸모가 없다는 것이죠.
카펜치스: 이 점에서 우리는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점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결정적인 것은 임금에 뿌리를 두었던 권력관계를 바꾸는 데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팸플릿에서 발전시키고 또 ‘학생에게 임금을’ 캠페인으로 나아가게 했던 주장은 대학의 진정한 변혁에는 학생들의 점점 늘어나는 능력, 즉 학생들이 스스로 행동을 조직하고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 교육에 있어 결정적이었던 훈육의 노동을 깨부수는 능력이 포함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바로 그것이 공개적으로 진술된 이 글의 은밀하면서도 명시적인 논리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이 이 글이 교육에 대한 비판이었다고 본 것은 옳습니다.
야콥센: 또한 그것은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일인 빚과 채무 노예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채무가 훈육의 척도라는 것을 알고 있죠.
카펜치스: 그렇죠, 이중[착취]!
페데리치: 성적 매기기(grading)도 있죠! 이 책은 좌파 활동가가 성적을 매기는 밤에 관해 써야 했습니다! 좌파 선생의 “굴욕적인(degrading)” 밤을 말이죠. 저는 좌파 동료들과 이것에 관해 아주 많은 대화를 나눠왔죠.
가브리: 좌파의 굴욕적인 밤이라고요?
페데리치: 네, 좌파 선생의 ‘격을 떨어뜨리는’(de-grading) 밤 말이죠. 제가 얘기하는 것을 이해하신 분 없나요?
페데리치: 그렇습니다. 내일 당신은 학생들의 성적을 매겨야 하죠. 하지만 당신은 깨인 선생이고, 그래서 물론 당신은 성적 매기기가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그것이 등급[계급] 체계의 본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너무나 희망적인 교육관, 당신에게 잠재적으로 혁명의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교육관—아마도 당신은 맑스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겠죠—을 갖고 있죠. 당신은 학생들이 당신이 가르친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에 확신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누가 B나 B-, C+ 인지를 결정해야만 합니다. 어쩌면 C-나 D도 말이죠. 사람들은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밤을 보냅니다. 그들은 학생에게든 교과과정이든 모두 공정하기를 바라지만, 대개는 이 결정이 내려지는 맥락, 즉 어떤 선택을 내리길 요구하며, 대부분의 경우 등급[계급] 기반을 가진 맥락으로부터 딸려 나온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하죠. 바로 이 순간들 중 하나에서 진실이 표면에 드러납니다. 학기 말이 되면 ‘맑스와 혁명에 관한 수업’에서[웃음], 학생들은 성적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낙제한 학생들은 다시 그 수업을 택하고 더 돈을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충분한 학점을 취득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거리를 청소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대학이 무엇이고, 공장체계와 선별기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시야를 놓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있습니다. 여기서의 비판은 많은 좌파들이 이 체계를 받아들인다는 점—성적 매기기를 받아들이는 한 우리 모두는 이 문제에 걸려 있습니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선별에 기여하지 않는 척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짐작컨대 우리는 의식을 고양시키는 교과과정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가령 미국에서는 학생들이나 선생들이 학점제를 폐지하는 대규모 투쟁을 벌인 적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일부 급진적인 선생들은 모두에게 A를 주기도 하지만 투쟁하지 않는 한에서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1970년대 이탈리아에서는 학생들이 집단-학점(group-grade)을 부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학점을 폐지할 수는 없었지만, 집단-학점은 부과했었죠. 기본적으로 15명이나 20명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시험을 치르고 하나의 학점을 받는 것이죠.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지만, 몇 년간은 그것이 널리 적용되었었죠.
익명의 참여자1: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집단적으로 일어났던 다른 일은 없었나요?
페데리치: 많은 협동작업이 있었습니다. 가령 특정한 커리큘럼을 부과하는 식으로 무엇이 공부되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려는 협동작업이 있었습니다. 나아가 ‘프레-살라리오’(pre-salario)을 위한 투쟁이 있었는데, 그것은 ‘학생에게 임금을’과 유사한 “미리받는 임금”을 의미합니다.
야콥센: ‘학생에게 임금을’ 캠페인은 학생 삶의 경제적 측면에 더 기울어 있습니다. 더 넓은 관점(성, 젠더, 인종 및 억압과 해방에 관한 다른 여러 새로운 인식방식)에서 해방 쪽에 더 기울어 있던 1960년대와 달리, 1970년대에 투쟁은 다시 화폐와 자본에 집중했죠. 사회에서 학생의 권리 및 처지가 사다리의 훨씬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간 오늘날의 상황을 돌아보면, 저는 어떤 신비화가 있었기에 자본은 이것을 교묘히 넘어갈 수 있었는지가 궁금합니다. 1970년대 중반의 무상교육에서 학생이 채무 노예가 된 오늘날의 상황으로 나아간 것은 상당히 중요한 작용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종류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카펜치스: 이것이 일어난 것은 한 가지 의미에서는 1950-60년대에 발전한 계급들 간의 케인즈주의적 관계의 종식 및 1970년대의 위기로 나아간 메커니즘과 관련이 있습니다.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재생산 영역에서 변형—학생들에게는 대학에서 일어나는 일이 그러하며, 또한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난 일이 그렇습니다—입니다. 그래서 가령 1970년대 학생들에게 일어났던 일은 복지의 종식 에서 일어났던 일과 닮아있습니다.
페데리치: 그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에서 [공공장소] 무료입장에 대한 공격은 여성 복지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국가로부터 일정한 원조를 받는 모든 사람들과, ‘부양아동가족원조’(Aid to Families With Dependent Children[AFDC])를 받는 여성 대부분이 비난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이를 키우는 것이 노동’이며, ‘“사회”는 새로운 세대에 투자해 이익을 얻는다’는 가정 하에서 한부모 엄마에게 일정한 원조를 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복지혜택을 받는 여성들을 “무임승차자”, “기생충”, “사기꾼”으로 폄하하는 대규모 캠페인이 증가하게 되었죠. 거기에는 강력한 인종적 요소가 있었는데, 왜냐하면 복지혜택을 받는 여성들 대부분이 백인이었지만, 복지를 위해 싸우는 여성들 대부분 흑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클린턴 정부 하에 있던 1996년은 복지제도를 폐지하고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이 점점 더 거세지게 되는 긴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날 사회보장제도는 사회적으로 파괴적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노인들은, 사회보장기금이 그들 자신의 월급에서 나오는 돈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파산시키고 새로운 세대의 미래를 파괴한다는 식의 죄를 사실상 뒤집어쓰고 있죠.
카펜치스: 이런 일이 일어나는 방식은 정말 여러 단계를 거쳤습니다. 분명한 것은 대학의 수준에서 일어났던 첫 번째 단계가 새로운 조직화 방식을 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학의 재정정책은 순수하고 단순하게 위에서 아래로 작동하는 방식으로 변형되었습니다. 대학들은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기계로 그들 자신을 느리게 변형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대학들이 자신들을 비영리적인 공공기관으로 내세운다 할지라도—사립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구조를 공공연하게 표명하게 된 것이죠. 그런 점에서 대학은 그들 고유의 논리를 가진 환경을 창출하기 시작합니다. 일단 여러분이 대학 자체가 학생 등록금 기반으로 작동할 수 밖에 없는 어떤 상황을 창출하기 시작한다면, 그에 따라 등록금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되는 논리인 것이죠. 그에 대한 수학이 있는 것이죠. “다른 출구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 이르게 된 대학제도의 한 유형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금융위기와 경제위기에서 강화되는 그런 유형을 말이죠. 그래서 대학은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계속해서 등록금을 인상하고 그래서 수백만 명의 학생들과 그 가족들에 의한 미시적 위기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야콥센: 조지 당신도 도처에서 언급했듯이, 1960년대에는 대학에 많은 국비가 투자되었고, 그래서 그들이 돌려받은 것은 반란이었습니다. 그래서 1970년대 국가는 캠퍼스로부터 철회합니다. 그들은 자본이 국가가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 훈육한다는 점을 이해했습니다. 화폐는 사람들을 훈육하는 최상의 길이죠. 당신은 그것이 1960년대의 결론이었다고 말하겠죠.
카펜치스: 아주 중요한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대학들의 형태 변화는 모두에게 너무나 분명해서 이제는 그것이 상식입니다. 학생들의 삶에 대한 우리의 비판이 이제는 그저 상식이죠. 지금의 문제는 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학생들이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는 힘에 비해 상황이 너무 빠르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가브리: 이들 ‘가사노동에게 임금을’ 투쟁과 ‘학교노동에게 임금을’ 투쟁은 둘 다 정말 흥미로운 차원이 있습니다. 노동으로 보이지 않는 특수한 종류의 노동에 대해 임금지불을 요구하는 것은 장 자체를 다시 형성할 수 있는 일종의 투쟁지평을 여는 것이니 말이죠. 조지, 당신이 비록 그것이 상식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 투쟁의 어떤 부분이 상식으로 여겨지는지 그다지 확신하지 않기 때문에—저는 우리 대부분은 이 ‘학교노동에게 임금을’ 투쟁에 대해 잘 모른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이 캠페인들의 어떤 부분이 여전히 잠재력을 지니는지가 궁금합니다. 가령 현재의 투쟁들은 등록금이 인상되면 그에 반응하는 경향을 띱니다. 하지만 오늘날 무엇이 투쟁의 지평을 열 수 있을까요? 어떤 종류의 투쟁이 장을 다시 형성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오늘날 어떤 식의 투쟁이 상황을 보는 우리의 방식을 다시 형성할 수 있습니까? 이 문제의 일부에는 우리가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에 있는 것 같거든요.
앨런 스마트(Alan Smart): 팸플릿이 다룬 것 중 하나는 1970년대의 위기에서는 좋은 일자리가 더 이상 주변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구에서 탈산업적인 조건이 지닌 의미를 잘 지시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이 훨씬 더 진전되었음을 압니다. 이제는 적어도 수사학적으로는 복지가 ‘기생충의 거저먹기’(parasitical handout)로 인식될 뿐만 아니라, 모든 임금이 그렇게 인식됩니다. 시간당 임금을 기대하는 노동자는 충분히 열정적이지 않다고 인식됩니다. 여러분이 언급한 이 새로운 “기업가정신”의 수사학에서 모든 사람은 그저 작은 회사 정도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스타트업”이며, “예술가”이고 “창조적 노동자”입니다. 이런 식의 노동은 실제로 옛 산업모델 하에서는 모두 재생산노동이었죠. 경영은 재생산노동이며, 금융도 재생산노동입니다. 그래서 이제 지양되고 거부되거나 해외로 내쫓기는 것 혹은 중국으로 보내지는 것이 물건의 실제 생산입니다. 저가의 재생산노동이 여러분을 계속 일할 수 있게 만드는 가사노동이라면, 고가의 재생산노동은 금융·경영·마케팅이며, 이것들은 벤처 기업을 성공할 수 있게 합니다. 이들 재생산노동들 간의 간극은 좁혀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모두는 노트북으로 일하는 기업가이자 프리랜서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동안 우리가 대여하고 청소한 침실에서 속옷만 입고서 말이죠. 무엇이 생산되었는지, 일하면서 받는 임금이 얼마인지 묻는 것은 무례한 일입니다. 1990년대의 호황에서는 여러분이 충분히 활기넘치고, 충분히 젊다면, 월가로부터 자금을 받을 수 있고, 또 그 돈을 빨리 써서 성공할 수 있다고, 그것은 선물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것은 빚이 아니었고, 주식이나 “리스크” 같은 것이었죠. 지금은 착취가…
페데리치: 지금은 착취가 숨겨져 있죠.
스마트: 저는 임금의 잠재적 부정성(potential negativity)에 대한 일종의 향수를 느낍니다. 임금노동자는 리스크를 떠안지 않습니다. 고용주가 여러분의 노동으로 여러분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은 벌지 몰라도, 여러분도 알다시피 입찰에 실패하거나 사업이 망해도 그들은 여전히 여러분에게 임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반면에 이제는 모든 것이 기업가정신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시간에 “계획안”을 작성해야 합니다.
페데리치: 그리고 여러분은 혼자서 여러분의 고용주와 대면하죠.
야콥센: 저는 전체 노동자의 60%가 인턴이고, 그들이 임금을 받지 않는 그런 회사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10년 정도는 지나야 인턴들은 직장에서 임금을 받게 될 것입니다. [웃음]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논리입니다. 우리는 일하러 가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여러분이 충분한 돈을 지불하면 놀라운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수수료 구조가 머지않아 생길 것입니다.
페데리치: 기업에 인턴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바로 대학입니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교육과정이 인턴십을 요구합니다. 이런 식으로 대학은 직접적으로는 학생들로부터, 간접적으로는 인턴십 제도를 통해 노동을 추출할 수 있는 것이죠. 잘 알려져 있듯이 회사는 대학으로부터 인턴을 얻기 때문에 기존의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이죠.
가브리: 여기 대학에서 온 학생들이 있다면—이는 여기에 제가 아는 몇몇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이 팸플릿에서 제기한 몇 가지 문제를 오늘날의 상황 및 투쟁들과 연관시키려고 애쓰고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죠.
익명의 참여자2: 저희 둘은 쿠퍼 유니언[각주:2]에 다니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제 막 졸업하긴 했는데, 1976년에 뉴욕시립대에서 일어났던 일이 당장 저희에게 일어나고 있어요. 그래서 장(場)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가,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등록금에 반대하려면 어떤 식의 힘을 발휘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졸업생과 동창생 공동체 전체가 등록금제에 반대하고 있지만, 대학 이사회의 고위인사들은 모두 우리와는 상관없는 사업가들입니다. 그들은 자본주의 모델을 따르며 그것이 “현실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정말로 우리에게 임박해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분이 이 문제에 답해줄 수 있다면… [웃음]
레오 까이오네(Leo Caione): 가브리씨가 말한 것을 활용하고 싶네요. 저는 사실 베네치아에서 학생이었고—저는 이탈리아인입니다—, 팸플릿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시간 맥락에서의 변화입니다. 저는 일종의 증언을 하는 셈이겠군요. 저에 대해 말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한 사례로 제 경험을 말씀드리죠. 제가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시대에 안 맞을 순 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학교에 가려면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제가 정말 어렸던 11살 때 말이죠. 요즘 학생들은 정말 제멋대로입니다. 요새 대학생들은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제 생각과 같지 않더군요. 이 팸플릿은 40년 됐고 이제는 관점이 정말 바뀌었습니다. 당시에는 많은 것이 진심이었지만 요즘 학생들은 제멋대로입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익명의 참여자3: 아마 제멋대로 구는 사람은 모든 세대에 있을 겁니다. 저는 당신이 하신 일반화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까이오네: 제 말은 그들을 교육하려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희생을 하시는 교수님들이 있다는 겁니다.
익명의 참여자4: 더더구나 도덕주의적인 관점을 회피하는 이행도 있습니다. 교육공간이 거래하는 곳이 되었죠. 학생들은 자신들이 학습비를 지불하고 있기 때문에 “자격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에 비춰보면 교육 공간에서는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페데리치: 미안하지만 제가 이 나라 학교제도에서 40년간 근무했지만, 여러분이 말한 게 제 경험은 아닙니다. 제가 가르친 학생들은 많은 일을 했고 희생했습니다. 그들은 “제멋대로”가 아닙니다. 학교에 다니는 것에 병행해 등록금 및 다른 비용을 지불하려고 쓰리잡을 뛰는 이들은 희생을 하고 있는 거죠.
익명의 참여자5: 학생들이 무료교육을 받든, 뉴스쿨 대학[각주:3]에 1년에 5만 달러[약 6천만원]를 내든, 어째서 그들이 사회의 일부분에게 늘 “제멋대로”라는 특성을 부여받게 되었는지 정말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쓰리잡을 뛰든, 수만 달러를 빚지든, 무료교육을 “즐기든” 이것이 어째서 그런 경우[제멋대로라고 평가받는]일 수 있는지 놀랍군요. 우리는 한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일종의 원칙을 갖고 있었으며, 실제로 사회는 이 점을 청년 세대들에 대한 의무라고 간주했죠. “제멋대로인” 학생들을 경험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런 담론은 실제로는 학생이나 노동계급과 같은 집단들을 관통하는 착취에 대한 공유된 분석을 해낼 가능성을 악화시킬 따름입니다. 저는 전에는 ‘학생에게 임금을’의 구호를 들어보진 못했습니다.
저는 영국에서 왔는데, 거긴 여전히 실제로 여기저기서 대학 점거가 계속 있습니다. 지금도 투쟁은 계속되는데, 학생시위의 물결은 2년 전에도 있었죠. 제 생각에 사람들이 이러한 대중주의적 공격노선을 점점 더 많이 이용하는 시점에서는 그렇게 투쟁을 계속하는 것이 아주 올바른 일인데, 어쨌든 이 노선은 이렇게 훈육과 부채의 상황으로 들어가는 것이 일종의 특권이라고 묘사합니다. 사람들은 “이 길을 가고 싶다면, 당신은 이제 1년에 9천 파운드[대략 1400만원]의 등록금을 내야한다…”고 말합니다. 이건 데카당스[멸망적]입니다. 우파 언론인들조차 더 이상 학위를 따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전보다 세 배 인상된 등록금을 청구하기 시작한 시점에 “대신에 우리는 이 일에 대해 임금을 요구하고자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환상적인 응답 방식입니다. 저는 그것이 정말 흥미로운 정치적 구호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그것이 읽히는 것을 들어서 정말 기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팸플릿을 읽는 것을 듣는 것은 정말 굉장한 일이어야만 합니다.
카펜치스: 장담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이 글을 식탁 위에서 썼을 때 우리는 이것이 이후 수십 년간 관심을 받는 주제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1975년과 2013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 성찰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일부라는 겁니다. 여태껏 얘기된 적이, 심지어 생각조차 되었던 적이 있었던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그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옮긴이주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1795-1881)은 영국의 평론가‧역사가로 근대 사회가 영웅적 지도자를 따를 때에만 산업만능주의의 해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구제책을 역설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국내에 『영웅숭배론』과 『의상철학』이 번역되어 있다. [본문으로]
옮긴이주 쿠퍼 유니언(Cooper Union)은 뉴욕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에 위치한 사립대학으로 증기기관차 엔진을 최초로 디자인한 사업가 피터 쿠퍼에 의해 1859년에 설립되었다. 전공은 건축, 미술, 공학 3가지만 개설되어 있다. 학비 전액 무료대학으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2014년부터는 무료 학비 제도가 없어지고 반액 장학금으로 변경되었다. [본문으로]
옮긴이주뉴스쿨 대학(New School)은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 위치한 사립대학으로 ‘사회연구 뉴스쿨’, ‘공연예술대’, ‘유진 랭 자유예술대’, ‘파슨스 디자인 스쿨’, ‘뉴스쿨 공공참여대학’ 등의 단과대를 가지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