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인터뷰는 2017년도에 만들어진 「 한국 '진보적인권운동'의 역사에 대한 인권활동가 인터뷰 자료집: 1993년부터 2012년까지의 시기를 중심으로」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진보적 장애운동의 원칙과 투쟁]
Q. 노들은 1999년 전장협과 한국 DPI와의 통합에 반대하며 독립하던 때부터 현재까지 장애인 대중투쟁, 현장투쟁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 명망가들을 통한 로비나 협상보다 현장 중심, 대중 중심의 장애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현장투쟁을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제가 생각하는 것은 ‘장애인들의 역량강화’ 정도인 것 같아요. 장애 당사자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배워서 자신의 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동권투쟁 이전에 입법투쟁이나 법제도를 위한 투쟁은 많이 있었어요. 그러나 그것은 상층부 중심의 운동이었어요. 장애운동 중에 대중적으로 입법운동을 해서 성공한 건 ‘장애인고용촉진법’ 투쟁뿐이었어요. 데모 등 현장투쟁을 하는 사람들과 로비, 정치하는 사람들의 합작품이었던 거죠. 그 이후에는 갈라지고 현장이 죽는 쪽이 되죠. 그때 상층부에서 역할을 했던 장애운동단체들이 권력을 갖게 돼요. 모든 것을 자기의 권력질서로 재편했죠. 나머지 한쪽에 있던 현장운동은 이후로 쭉 죽어갔던 거예요.
그런데 왜 여전히 현장투쟁의 중요성을 말하냐고 한다면… 2001년과 지금의 평가는 다를 수 있어요. 그래도 여전히 저는 현장투쟁이 중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1년 이동권투쟁이 중요한 건 이 투쟁을 통해 장애인 대중 주체가 형성되고 조직됐다는 점이에요. 특히 중증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대중 주체가 조직된 거죠. 그래서 장애운동의 역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중증장애인이 역사 전면에 나서다.’
2001년도 이전에 벌어졌던 가장 중요한 입법투쟁은 1990년에 ‘장애고용촉진법 제정 및 장애인복지법 개정’이라는 양대 법안 투쟁이었지요. 그 투쟁은 소아마비 장애인 중심의 경증장애인들이 주도했었지요. 그런데 그 의제는 자본주의 시장 내에서 고용을 장애인에게 얼마나 ‘할당’할 것인가였죠. 자본주의 시장 내에서 어떻게 보면 경쟁노동이 상대적으로 쉬운 경증장애인 중심으로 장애인의 고용 할당을 위한 투쟁을 한 거예요. 하지만 생산성을 중심으로 중증장애인의 고용 문제를 바라본다면, 고용시장에 접근할 수도 없는 중증장애인은 정말 무가치한 사람으로 노동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예요. 그런 측면에서 2001년 이전의 투쟁은 한계가 있었죠. 지금은 대개 우스갯소리로, 멸종 유형에 속하는 소아마비 장애인 중심의 경증장애인운동의 한계라 말하기도 하지요.
90년대 이후로 현장투쟁은 죽어왔어요. 반면에 국회에서는 그 당시 첫 번째 장애인 비례대표로 의원이 된 이성재 의원을 필두로 해서 장애인 관련 복지법안이 의회 중심으로 만들어졌어요. 이후로도 국회에 비례대표로 진출한 장애인 의원들을 중심으로 법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법이 대중적 투쟁이 아닌 의원 입법 중심으로 로비를 통해 만들어질 때는 그 법의 한계가 명확하게 보여요.
2014년까지 대략 15개 이상의 장애인 관련법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장애인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장애인 중심의 법이 아닌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법안 중에는 장애인 보장구에 관한 법률이 있는데 이것은 보장구를 제공하는 공급자나 전문가 중심, 혹은 산업 중심의 법이지, 실제 수급자인 장애인을 위한 법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보장구가 필요한 장애인에게 보장구를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고 이에 따라서 무료나 최소한의 비용으로 제공하여야 한다’고 강제할 수 있는 조항은 눈뜨고 찾아봐도 없어요.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적절한 보장구가 국내에 없는 것도 일정 정도 문제가 되지만, 가격 장벽 때문에 꿈도 못 꾸는 경우가 더 문제되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법은 아니지요.
저는 로비나 전문가를 통한 입법으로 법이 만들어질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강제하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의 대중적 힘이 조직되고 그 힘이 입법과정에 개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껍데기만 화려한 법안이 쉽게 만들어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대중적이고 주체적인 장애인의 힘이요. 그런데 과연 우리에게 아직도 그 힘이 있느냐는 거죠. 우리를 ‘대표’하는 몇몇의 국회의원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법은, 심지어는 우리에게 반동적인 입장에 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거죠. 바로 앞에서 예를 든 보장구에 관한 법은 만들어놓으니 그것을 확장시킬 수 있는 근거가 사라져요. ‘이제 만들어졌네, 됐네’라고 생각하면서 대중적 분노를 조직하기가 참으로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그러면 현장투쟁도 어려워지고 신기루를 좇는 느낌이 많을 때가 있지요.
Q. 『노란들판의 꿈』을 보면서 장애인들이 “싸우는 게 재미있다, 살아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중투쟁을 통한 역량강화에서 중요한 것은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 긍정의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A. 자기 긍정까지 나아가면 참 좋겠어요. 그러나 일단은 ‘할 일’이 생긴 거예요. 그리고 자신을 바라봐주는 사람이 생긴 것이죠. 그나마 ‘잘했다’고 같이 술 먹어주는 사람도 생긴 거고요. 전장연에서 최고의 투사인 이규식 같은 경우는 시설에서 살았었죠. 그런데 시설에서 나와 투쟁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계속 ‘나를 찾아와주는 사람이 없을까’ 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오는 사람을 기다리고, ‘나 만나줘, 나 만나줘’ 하는 사람이 되었겠죠. 그런데 싸우고 나니 일단 할 일이 있는 거예요. 법적으로 보면 불법이기도 하고, 보수 꼴통의 권력이 보면 ‘좌빨’이기도 하고, 보수언론의 눈으로 보자면 전문시위꾼이기도 하죠.
만약에 이규식과 같은 중증장애인이 취업이라는 것을 해서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평생 얼마나 벌 수 있겠어요. 아니 취직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으면 참 다행이죠. 그런데 이규식이 철로를 점거해서 이동권투쟁을 통해 만들어낸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설치비용, 한강대교를 6시간 동안 기어서 제도화한 활동보조서비스의 예산은 3조가 넘을 수 있어요.
혼자 살기 위해 살아가는 것보다 함께 투쟁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그 변화비용을 국가가 내게 만드는 투쟁은 어마어마한 돈을 버는 것이죠. 그리고 집구석에서, 시설에서 기생적 소비계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와서 할 일을 하는 것이고요. 그 투쟁 성과를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도 있는 것이고요. 나만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지하철역을 점거하고 싸워서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니까 장애인보다 더 많은 노인 분들이 이용해서 그들의 이동권까지 보장하게 되는 거니까요. 이런 측면에서 매우 자긍심이 생기는 운동인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투쟁이라는 것이 장애인들에게 해방을 만들기 위한 수단일뿐만 아니라, 그 투쟁의 과정 자체가 장애해방의 과정이라고 이야기해도 될까요?
A. 그렇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것보다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한 거죠.
Q. 2005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준비회의가 출범하면서 전장협 이후 현장 중심의 대중투쟁노선에 입각한 진보적 장애운동의 전국조직이 만들어집니다. 전장연 설립은 어떤 문제의식, 필요성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까?
A. 갑작스럽게 등장한 건 아니었고, 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장청), 전장협으로 이어지는, 그래도 한국사회 왼쪽에서 현장투쟁을 중심으로 조직적인 활동을 했던 거의 유일한 운동이 단절되었다가 전장연이 그 역사를 다시 계승하는 측면에서 이어간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전장협이 한국DPI와 통합된 이후에 단절되었던 대중적인 현장투쟁이 2001년 장애인 이동권투쟁을 통해 대중 주체들을 조직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전장협의 소속기관으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현장조직인 노들야학이 중심이기는 했지만, 이동권투쟁을 통해 다른 주체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죠. 바로 장애인자립생활센터라는 것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던 시기였지요. 이것들을 우리의 전선 내에서 묶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Q. 그렇게 판단한 핵심적인 주체는 누구였나요?)그 당시 에바다 투쟁을 함께했고 노들야학 상근교사로 활동을 시작했던 김도현을 꾔어요. 진보적 장애운동을 하자고요.
[김도현(노들장애학궁리소 활동가) : DPI로 통합될 당시에, 숫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재야에 남아서 현장투쟁 중심의 운동을 복원해보자는 열망을 가진 이들이 있었어요. 정태수 열사도 이때 함께했고, DPI로 간 상호형도 함께했어요. 자금이 없어서 이 일 저 일 다 해보기도 했고요. 그런데 2004년도에 전장연을 구상할 때는 실제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활동하는 활동가는 박경석 이외에는 뚜렷이 없었어요. 태수형은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때는 진보적 장애운동이라는 뜻에서 ‘진장연’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1996년 장애인고용촉진걷기대회에서 정태수 열사(오른쪽). 사진 정태수열사추모사업회. 출처 : 비마이너
Q. 노들 외에 어떤 진보적 장애인단체들이 적극적으로 결합하였나요?
A. 몇몇 장애인단체가 있었죠. 그리고 이후에 만들어지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적극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했고요. 서울지역에 있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는 노들야학 출신의 활동가가 많이 있죠. 이동권투쟁을 함께했던 사람들 중에 소장이 된 사람이 많아요. 유명한 이규식, 최진영, 박현, 조미경 등등… ‘자립생활센터’라는 것이 모습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국가지원도 받지 못할 때였지만 운동의 근력을 통해 장애인자립생활 이념을 받아들이고, 그 이념을 바탕으로 사업을 함께 연결하며 진보적 장애운동을 고민했던 중증장애인 당사자 활동가들이 이런 개념을 받아들이고 독자적으로 활동했던 거죠. 이 활동가들이 지금은 소장이 되어 조직을 건설하고 활동하는 데 큰 힘이 되었지요. 마치 개척교회 세우듯이… (하하) 지금은 15년의 세월이 지나가고 있고 저를 비롯하여 노령화되는 과정에 있다고 할까, 새로운 운동주체의 변화를 준비할 시기이고, 이것을 어떻게 전환시킬까가 고민이에요.
Q. 전장연은 한국장총이나 한국DPI와는 입장이나 노선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입장차가 전장연 내부에서의 입장 차이나 시각 차이는 없나요? 가장 극명하게 갈렸던 입장 차이는 무엇이 있나요?
A. 전장연은 ‘상설 투쟁체’입니다. 내부에 입장 차이도 많죠. 하지만 장차법 제정이나 이동권투쟁에서는 특별히 입장 갈릴 이유가 없어요. 저상버스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장차법은 장판 내 보수진영도 찬성하는 거니까요. 문제는 전달체계와 관련된 것들로 생겨납니다. 결국은 돈의 문제고, 사업권의 문제죠. 우리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중심으로 조직화를 해요. 그런데 센터를 운영하는 사람 내에서 사업만 할 것이냐, 투쟁도 함께 할 것이냐 하는 충돌이 있어요. 이런 것에서 전장연의 현장조직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소속의 센터들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총련)의 구성으로 참여하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의 입장이 갈라집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운동’이냐 ‘사업’이냐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문제는 전혀 아니랍니다. 그러나 운동을 중심으로 사업의 문제를 푸는 것인지, 사업을 중심으로 운동은 그냥 쓰다 내버리는 휴지장인지는 매우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내부에서도 사업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경향이 강해요. 그렇게 사업 중심으로 가다보면 사업권을 가지고 전장연에서 함께하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도 부딪히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죠. 이건 사업 전달체계의 문제예요. 전장연 내 일부 지역에서는 갈등으로 심각하게 갈라서기도 해요.
[김도현 : 저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장연과 장총연, 각각에 센터 연합체가 있다고 봤을 때, 초기에는 정체성이 명확하게 갈렸어요. 투쟁 중심이냐, 이권 중심의 사업이냐, 이렇게요. 그런데 센터 전반의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전장연에 속해 있지만, 소장의 마인드나 센터 내 문화가 사업 중심으로 가는 경향이 있어요. 투쟁을 안 하지는 않지만, 무게중심이 옮겨 가는 경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죠. 지향에 동의하진 않지만, 사업에 대한 거부 자체를 하지는 않는 거죠. 이건 소속과는 다른, 관료화된 문화가 나타내는 문제인 것 같아요.]
전장연이 구성하고 있는 연대단체라는 건 간단해요. 한국장애인자립센터협의회,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가 장애인단체로 중심을 이루고, 함께 연대하고 있는 정당조직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노동조합 등이 있지요.
정당조직은 이렇게 평가하면 좀 다르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진보정당이 대중조직의 직접적인 참여 단위로 결합하면서 긍정적인 요소도 많았지만 오히려 조직 내에서 갈등을 많이 만들어내기도 했던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활동하는 데 있어서 대중조직에 힘을 싣고 조직적 강화에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파적인 입장에서 정당 중심의 입장으로 인해서 활동가들이 함께 있다가 많이 떠나기도 했지요.
개인적 판단으로는 아까 말했던 사업권 문제도 있지만, 결국에는 ‘장애운동의 방향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에 관한 차이에서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도현이가 평가하고 토론했던 개별 예산제와 개인 예산제(direct payment)에 관한 논의에서 입장이 달라요. (사회복지에 대한 현금 지급제) 이런 차이가 해결 방식에도 차이를 만들어요. 장애등급제 폐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문제 등을 이야기할 때 투쟁 방향과 중심이 현재의 예산과 조건에서 그것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전달하는 데 있는지, 장애인들을 위한 전체적인 예산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는 데 있는지에 따라 입장이 갈리는 경우가 발생하고, 그게 참 고민이랍니다.
[장애인권과 국제인권기준]
Q. UN은 2006년 국제장애인권리조약을 발표합니다. 이러한 조약이 한국사회에서 실제로 어떤 영향이나 효과를 만들어낸 것이 있나요? 혹은 운동의 과정 속에서 이 조약을 활용하신 경험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사실 이건 제가 묻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 인권운동에서 조약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주거권에서도 조약 이야기를 하고요. ‘그것이 인권운동에 도움이 되었냐?’라는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최근에는 그런 국제규범을 활용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어요. 구청에서 협상 들어갈 때, “UN 장애인권리협약을 아십니까?”라고 물어보면 공무원들은 몰라요. 장애등급제 폐지를 이야기할 때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UN 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이걸 폐지하라고 했는데…” 이러면 할 말을 잃더라고요. (하하) 이럴 때는 매우 필요하죠. 특히 구청 공무원 같은 경우에는 UN 장애인권리조약을 내밀면 별다른 말을 못 해요. “박경석이가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훨씬 효과적인 거죠. UN이 가지는 맹목적인 질서와 권위가 있으니까요. 이것이 ‘이빨 놀릴 때’는 굉장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예산 같은 문제에서 버텨버리면 그런 국제협약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박근혜 정부가 여기서 뻐팅겨버리면… 국가 관료들은 사실 이걸 신경도 안 써요. 그래도 ‘저들’이 우리가 모르는 법지식을 가지고 ‘법이 이렇더라’, ‘지침이 이렇다’라고 이야기하면 이때 우리에게는 내세울 수 있는 무기가 되는 거예요. 하지만 그 이후에 예산 문제 등, 어떤 경우에는 너무나 공허하지요.
Q.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한국의 경우 한국 DPI를 중심으로 이동권, 자립생활, 독자적인 장애여성 등의 항목을 넣기 위해 노력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 과정에 박경석 활동가도 참여하셨나요?
A. 전혀 참여를 못 했어요. 일단 국제회의를 참여할 돈이 없었고…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을 제정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한 DPI 등 참여하는 쪽에서 전장연 계열에 어떠한 연대 제안도 하지 않았었고요. 제정과정에서 전장연은 정보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기도 했지요. 국제활동과 법제정 등 인권협약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일정 부분 지식과 전문적인 능력과 경험이 필요한 활동이라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변호사 그룹과 교수 등 지식인 그룹들이 많은 매력을 느끼는 활동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국제무대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을 중심으로 인권 문제를 이야기할 때 국가 간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그 영향력도 매우 크다고 생각해요. 일단 한국 정부는 외국에 나가 장애인인권 문제로 쪽팔리는 게 싫어서 많은 UN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신경을 쓰기는 하죠. 하지만 그 또한 그들의 시혜와 배려의 범위에서 베풀 수 있는 예산 범위 안이지,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예산 반영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권리협약이 옹호하는 자유권적인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신경을 쓰고 개선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과 대책을 마련하는 것처럼 비치지요. 그리고 언론이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니 효과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장애인권운동’이라는 것의 실효성은 나름대로 있는 거고,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의 효력은 각 나라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사회권적인 문제, 정치경제적인 문제로 접근하면 그 효과는 거의 꽝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그것이 현재 장애운동에서 전장연이 목숨 걸고 활동해야 할 영역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아요.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이 의미가 있고, 이것을 기반으로 한 활동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전장연 활동 전망과 역량 그리고 인적 자원을 생각하면 아직은 거리가 너무 먼 당신이고,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는 장애인들의 권리와 실질적인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투쟁할 수 있는 중증장애인들의 대중 역량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장애운동과 인권운동 사이의 긴장]
Q. 박경석 활동가는 한 대담에서 “자꾸 추상적 인권으로 몰아가는 것, 계급성도 없는 보편적 인권은 아마 자본주의 테두리 안에 있는 자신들의 정치 안에 문제들을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비판하셨습니다. 현재 인권 개념 자체가 이러한 역할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인권이라는 개념이 장애운동에서 새롭게 만들어낸 틀이나 시각은 없나요? 범박하게 말하자면 인권운동이 장애운동에 도움이 되었나 안 되었나가 궁금한 건데요, 인권이라는 개념이 장애운동에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A. 성경이 장애운동을 위한 개념이 될 수 있을까요? 코란은요? 인권, 인간의 권리라는 아주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이념이 제가 구체적인 운동을 하는 데 ‘어떤 지향점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해 제게 이야기하라고 하면, 인권이란 종교와 같은 게 아닌 가 싶어요. 인간을 사랑해야 하고, 권선징악의 문제… 이런 문제잖아요. 구체적인 현실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인권은 그 정도의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인권 개념을 가지고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어떻게 조직을 할 것이냐를 고민하는 것만이 인권이 구체적인 것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이 인권운동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고요.
Q. 하지만 박경석 활동가가 함께 투쟁했던 인권운동가들도 있잖아요. 발바닥도 장애인권운동단체이고요.
A. 발바닥은 장애인인권운동을 하는 데 굉장히 소중한 단위이지요. 그 단체가 활동에 초점을 두는 것은 바로 ‘탈시설’이라는 매우 중요한 의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지요. 그들이 활동하는 것은 그저 탁상에서의 논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설에 있는 중증장애인 당사자를 직접 찾아가고 만나고 상담한 뒤에 나와서 어떻게 현실적으로 지원이 가능한지를 찾아서 활동하는 단위이지요. 조금은 다르지만 노들야학의 연대활동은 관심사가 좀 다양해요. 노들의 연대사업을 책임지는 한명희를 중심으로 유성기업 노동자투쟁, 맘편히장사하고싶은상인들의모임, 반올림, 밀양, 성소수자투쟁 등 매우 다양하고 바쁘게 연대하고 있지요.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권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과 어떻게 결합하고, 변화를 위해 함께 행동할 것인가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저는 결국에는 ‘현실사회 속에서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이냐’라는 문제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진보적 인권활동가들과 발바닥 등 현장에서 생고생하는 인권활동가와 단체를 매우 소중하고 인권을 보다 진보적으로 변화시키는 핵심적 실천가라고 생각해요.
Q. 지금의 인권운동판에 대한 불만을 갖고 계신가요?
A. 제가 방금까지 ‘인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일반적인 개념과 실천을 이야기한 것이었어요. 이 인권이라는 것이 보편성을 기반으로 할 수는 있어도,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유권적인 문제는 다룰 수 있어도, 사회권의 문제는 좀 다른 접근이 필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재판받을 수 있는 권리’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건희와 제가 같이 적용될 수 있겠지만, 사회적 권리로서의 인권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인권의 책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연석회의, 조직운동으로서의 인권운동에 대해 평가하라고 한다면 전혀 달라요. 그 단위들은 인권운동 중에서도, 장애운동 내에서 전장연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요. 박래군 활동가가 ‘진보적 인권’이라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이건 저희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장애운동이라고 하면 무수히 많은 활동가와 단체들이 있고, 장애운동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다 장애운동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진보적 장애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인권도 ‘진보적 인권’의 개념들이나 활동들을 좀 더 강하게 가지고 가지 않으면, 인권이라고 뭉뚱그려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들에게 모든 영역을 빼앗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보수진영의 사람들도 인권을 이야기하잖아요. 박근혜도 선거 때 인권침해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요. 그래서 인권이라는 언어와 담론은 싸움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을 제대로 해석하고, 사회의 변화를 위한 행동들이 함께 가지 않으면 ‘인권’이라는 것이 너무 쉬운 말이 아닌가 하는 거죠. 예전에 사랑방 등으로 대표되는 진보적 인권운동의 활동이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인권이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런 활동가들이 지금은 ‘전문시위꾼’이라고 불리고 있죠. (하하) 사실 언론에선 우리에게 전문시위꾼이라는 표현조차 붙이지 않아요. 그러면 자신들이 욕먹으니까요. 그것이 나는 장애 문제를 보는 보수언론의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투쟁을 해도 ‘배려와 시혜의 대상’이라는 범주를 벗어날 수가 없어요. 약간의 일탈만이 있을 뿐. 이것은 장애인의 사회적 위치와도 연관된다고 생각해요. ‘시혜와 동정 그리고 혐오’라는 그 어디엔가 장애인의 정체성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