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그리고 하버마스에 이어서 프랑크푸르트 학파 3세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게 계몽의 변증법, 하버마스에게 의사소통행위가 핵심이었다면, 호네트는 인정이라는 개념을 현시대를 진단하기 위한 핵심개념으로 제시한다. 최근 EBS에서 방영되고 있는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에서 호네트가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교수자격논문으로 제출했던 『인정투쟁』은 이후 그의 모든 저작의 근간이 되는 핵심적인 저작이다. 이미 한국에서도 가장 중요한 저작인 『인정투쟁』을 비롯해서 악셀 호네트와 낸시 프레이저의 논쟁을 담은 『분배냐, 인정이냐』, 『비규정성의 고통(2001)』, 『물화(2005)』, 『사회주의 재발명(2015)』 등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다.[각주:1]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인정 : 하나의 유럽 사상사』(이후 『인정』)가 번역, 출간되었다. 그는 『인정투쟁』에서 헤겔과 미드를 경유해서 인정이론을 제시했던 것과 달리, 『인정』에서는 독일적 전통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의 사상적 전통에서 인정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요구는 인정이라는 개념이 사상적, 지역적, 문화적 전통에 따라서 매우 상이한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미 「이데올로기적 인정」[각주:2]에서 다룬 것처럼, 인정은 호네트가 말하는 것처럼 긍정적 자기관계, 자율성, 자유의 조건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알튀세르가 말하는 것처럼 지배와 예속의 핵심적인 장치로 이해되기도 한다.
『인정』에서 호네트는 단순히 좁은 의미의 인정의 개념사를 다루지는 않는다. 인정 개념은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나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그전에도 이미 우리가 오늘날 인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들을 표현하기 위한 여러 개념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호네트는 이러한 연구를 위해 코젤렉(Reinhart Koselleck)과 시겔(Jerrold Seigel)의 논의방식을 참조한다. 호네트에 따르면, 코젤렉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시민이라고 번역되는 여러 표현들, 시투아얭(citoyen), 미들 클래스(middle class), 뷔르거(Bürger) 사이의 의미 차이와 각각의 나라에서 시민들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가 프랑스, 영국, 독일에서 발전된 근대 시민사회의 세 가지 유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시겔 역시 프랑스, 영국, 독일을 근대 시민사회 발전의 세 가지 패러다임으로 간주하고 있다.(30) 따라서 호네트는 프랑스, 영국, 독일에서의 인정 관념에 주목하면서, 「2장 루소에서 사르트르로. 인정과 자아상실」에서는 라 로슈푸코(François de La Rochefoucauld)부터 루소(Jean-Jacques Rousseau), 사르트르(Jean-Paul Sartre), 라캉(Jacques Lacan), 알튀세르(Louis Althusser))에 이르는 프랑스적 전통을 다루고, 「3장 흄에서 밀로. 인정과 자기통제」에서는 흄(David Hume), 스미스(Adam Smith), 밀(John Stuart Mill)을 포함한 영국적 전통을 다루며, 마지막으로 「4장 칸트에서 헤겔로. 인정과 자기결정」에서는 칸트(Immanuel Kant), 피히테, 헤겔)을 관통하는 독일적 전통을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호네트는 「5장 사상사적으로 비교해 본 인정 : 체계적 결산 시도」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지적 전통에서의 인정에 대한 이해를 종합적으로 고찰한다.
2.
호네트는 프랑스에서의 인정 관념의 특징을 아무르 프로프르(amour propre)에서 찾는다. 아무르 프로프르는 루소에 의해서 잘 알려진 개념이지만, 루소보다 앞서 라 로슈푸코의 『잠언과 성찰』에서 이미 아무르 프로프르에 관한 논의가 중심이 된다. 그는 아무르 프로프르, 즉 사회적으로 높게 평가되는 자질들을 공개적으로 내세우고,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 실은 자신에게 실제로는 없는 특성들을 꾸며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 이러한 라 로슈푸코의 의심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 적절하게 이해될 수 있다. 프롱드의 난에 가담했던 라 로슈푸코는 투쟁이 실패한 이후 동료들이 높게 평가될만한 자질들을 가장하여 왕의 총애를 받고자 노력하는 모습에 실망했고, 사실 『잠언과 성찰』은 “이론 형성이나 학문적 인식이 아니라 자신의 동시대인들을 발가벗기기”(42) 위한 것이었다. 호네트가 아무르 프로프르를 “자기과시욕구(Geltungsdrang)”나 “허영(Eitelkeit)”(40)으로 번역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는 아무르 프로프르가 우선 없는 자질을 가장하여 인정을 받고자 하는 타인에 대한 기만이라는 것을 지적한 후에 잠언 119번에서 “우리는 남들을 대할 때 위장하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서 결국 자기 자신을 대할 때에도 위장한다”(41)고 말하며 위와 같은 타인에 대한 기만이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기만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호네트는 이와 같은 라 로슈푸코와 모럴리스트들이 갖는 부정적 인간학의 문제설정이 이후 프랑스적 전통에서 인정이 부정적 의미를 갖게 된 이유라고 말한다.
루소 역시 라 로슈푸코, 몽테뉴 등 프랑스 모럴리스트들의 영향을 받았고, 1755년 출간된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아무르 프로프르라는 문제의식이 중심이 된다. 그러나 루소는 라 로슈푸코나 모럴리스트들과 달리 아무르 프로프르를 단지 자연적 충동이나 정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아무르 프로프르가 자연적으로 주어진 제1자연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루소에게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과의 비교와 경쟁을 통해서 얻게 되는 제2자연이다. 루소는 이러한 사태를 표현하기 위해 아무르 프로프르를 아무르 드 수아(amour de soi)라는 대립되는 개념과 함께 사용한다. 루소 역시 아무르 프로프르가 타인들과의 관계에 들어서면서 얻게 되는 타자의 인정에 대한 욕구이기 때문에, 결국 타자의 평가 기준에 의존하게 되는 이러한 자기 상실을 비판하며, 아무르 드 수아, 즉 나 자신의 판단 기준에 따라서 판단하고 행동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후 『에밀』이나 『사회계약론』에서는 교육이나 사회 제도를통해 이러한 인정 욕구가 동등한 상호적 존중이라는 형태에 이를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하지만 하지만, 호네트는 루소가 결국 아무르 프로프르에 대한 의심을 평생 놓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컨대 1782년 루소 사후에 출간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루소는 가능한 한 모든 인간 공동체로부터 고립된 채로 자기인식의 길을 가라”고 권하며, “『몽상』의 유명한 다섯 번쨰 산책에서 루소는, 자연의 변화에 대한 고요한 관찰이 왜곡되지 않은 자아를 적절히 인식하는데 얼마나 이상적인 형식인지 묘사한다.”(69~70)
호네트는 이처럼 라 로슈푸코와 모럴리스트들, 그리고 루소의 아무르 프로프르라는 문제설정으로 인해 이후 사르트르, 알튀세르, 라캉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적 전통에서 인정이 부정적 의미를 갖게 된다고 말한다.
3.
이어서 호네트는 영국에서의 인정 관념을 다루는데, 영국적 인정 관념은 흄, 스미스, 밀에 의해서 발전된다. 프랑스의 경우에서와 달리, 여기에서는 공감(sympathy)이 중심이 되며,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도구적, 경제적 행동 방식이 일반화되는 상황이 시대적 배경이 된다. 17, 18세기 영어권에서는 도덕의 기원에 관한 논쟁이 치열했는데, 한편에서는 홉스(Thomas Hobbes)의 추종자들이, 다른 한편에서는 그로티우스(Hugo Grotius)의 추종자들이 도덕의 기원이 이기심인지 타고난 도덕 감각(moral sense)인지에 관해 논쟁했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인물은 섀프츠베리(Anthony Ashley Cooper, 3rd Earl of Shaftesbury)와 허치슨(Francis Hutcheson)이다. 그들은 홉스를 비판하면서, 인간이 다른 인간들에 대해 걱정과 염려, 그들의 안녕을 고려하는 타고난 도덕 감각(moral sense)을 가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배경 아래서 프랑스와 달리, 영국에서의 인정 관념 혹은 공감은 처음부터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흄은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의 3권인 『도덕에 관하여』를 집필하면서 이미 자신이 허치슨의 논의를 수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흄은 여기서 두 가지를 수정하는데, 하나는 도덕 감각 대신에 공감 개념으로 대체하며, 다음으로 사람들에게 구속감을 부여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사려 깊은 관찰자”를 도입한다. 흄은 허치슨이 말한 도덕 감각, 즉 쾌 혹은 불쾌와 같은 반응이 도덕적 판단으로 연결될 수 명확하지 않다고 말하며, 오히려 타인의 감정을 따라 느낄 수 있는 능력인 공감을 통해서 여러 사람들이 어떤 행위의 유익함 혹은 무익함에 대해서 같은 감정적 반응을 함께 느끼고, 대게 유익한 행위를 칭찬하는 경향에 대해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흄은 인간은 이러한 판단이 단지 감정적이거나, 편파적인, 비일관적인 것이 아니라 “사려 깊은 관찰자”의 판결에 따라 객관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이 “명성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항상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하고, 계속해서 자신을 점검하고 통제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프랑스에서 라 로슈푸코와 모럴리스트, 그리고 루소에게서 인정이 아무르 프로프르라는 문제설정과 함께 타인에 대한 기만과 자기 기만, 자아 상실로 이어진다는 부정적 의미를 갖는데 반해, 영국에서는 인정은 공감이라는 문제 설정과 함께 사려 깊은 관찰자, 즉 불편부당하고, 객관적인, 공동체에 이익이 되는 판단에 규범적 권위를 부여하며, 이에 따른 자기 통제하는 것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당시 영국에서 자본주의의 발전과 점점 더 이기심과 사익 추구라는 자본주의적 행동 방식이 일반화되는 부정적인 상황에서는 프랑스의 경우와 달리 이러한 인정과 자기 통제가 오히려 공동체와 다른 사람들의 안녕과 관계되기 때문에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후 스미스는 공감을 통한 감정적 유대와 명예에 대한 관심이 인간이 사려 깊은 관찰자의 판단과 같은 공평무사한 판단을 하도록 자기 통제한다는 흄의 기획을 수용하며, 이를 “동료 인간과 정서적 조화 속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로 인해 타인에게 칭찬받을 만한 행위를 한다고 주장하며, 또한 밀 역시 칭찬과 비난의 규범적 힘과 사회적 인정에 대한 욕구로 해석하고 있다.(139)
4.
마지막으로 독일에서의 인정은 앞서 다룬 프랑스와 영국과는 또 다르다. 호네트는 프랑스의 중앙집권적인 왕정에서의 사회구조의 변동, 영국의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주목했는데, 이와 달리 독일은 여러 제후국과 도시로 분열되어 중앙집권적인 국가도 아니었고, 경제적으로도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오히려 17, 18세기 독일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시민계급이 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 무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두 측면 사이의 격차에서 기인”하는 문제들과 독일의 인정 관념이 “시민의 동등함”(156~7)과 관계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독일의 인정 관념의 중심이 되는 것은 칸트의 존중[존경](Achtung)[각주:3]개념이며, 이는 이후 피히테의 촉구(Aufforderung)[각주:4], 헤겔의 인정(Anerkennung) 개념으로 이어진다.
주지하듯이, 칸트는 『도덕형이상학 정초』와 『실천이성비판』에서 초월론적 전회 이후 자신의 실천철학을 전개하는데, 그 핵심이 되는 것은 정언명령, 곧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것을 네가 동시에 바랄 수 있게 해주는 준칙에 따라서만 행하라”(GMS, Ⅳ421) 혹은 실천이성의 근본 법칙인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KpV, Ⅴ30)다. 칸트는 한편으로 라 로슈푸코와 루소의 아무르 프로프르에 대한 경고에 대한 답변, 곧 자율성으로서의 자유를 주장하며, 다른 한편으로 흄과 스미스의 사려 깊은 관찰자의 문제에 대한 답변, 곧 이성의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는 준칙에 따라 행위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전히 도덕적 행위의 동기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다. 칸트는 이를 존중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는데, 호네트는 이러한 존중 개념을 확장함으로써 존중 개념을 인정 개념의 단초로 해석하고자 한다. 본래 칸트에게서 존중은 도덕법칙에 대한 존중이며, 이는 모든 경향성이나 외부로부터 촉발되는 감정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것으로, 감정이긴 하지만, 실천이성 혹은 법칙에 의해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감정이다. 칸트는 이러한 도덕법칙에 대한 존중이 인간이 도덕적으로 행위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호네트는 존중 개념을 통해 인간과 도덕법칙의 관계를 넘어 인간들 사이의 상호주관적 인정 관계를 설명하는데, 이를 위해 『도덕형이상학 정초』에서 하나의 긴 각주에 주목한다. 칸트는 “인격에 대한 모든 존경은원래 단지 (정직 등과 같은) 법칙에 대한 존경일 뿐이다. 이 인격은 우리에게 그에 대한 하나의 실례를 제공해준다. 우리는 또한 우리 재능을 확장하는 것을 하나의 의무로 여기므로 재능들을 소지한 어떤 한 인격을 대면하게 될 때 마치 그를 (나 역시 연습으로 이 점에서 그와 비슷하게 되도록 해야 하는) 법칙의 한 실례인 것처럼 표상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로부터 우리는 존경이라는 감정을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이른바 모든 도덕적 관심은 법칙에 대한 존경에서만 성립된다”(Ⅳ401)[각주:5]고 말한다. 즉 인간은 다른 인격에 대해 그가 법칙의 실례, 혹은 존중할만한 가치를 담지하고 있는 자로서 표상하기 때문에 그를 존중해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타인에 대한 존중 속에서 준칙의 보편화를 위해 나의 이기심을 스스로 제한함으로써, 나와 타인 모두 자율적인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하지만 호네트에 따르면, 칸트의 이러한 존중 개념에는 경험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이 혼합되어 있으며, 칸트는 이러한 경험적 주장과 초월론적 주장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다. 이어서 호네트는 피히테가 촉구 개념을 통해 이러한 칸트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초월론 철학의 틀 안에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며, 헤겔은 이러한 피히테의 철학을 급진적으로 탈-초월화한다고 말한다. 결국 헤겔의 인정 개념은 칸트의 존중 개념에서 드러나는 자기 제한, 자율을 통한 자유를 역사적이고 제도화된 틀 안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5.
물론 호네트는 이러한 프랑스, 영국, 독일에서의 인정 관념이 가지고 있는 과도한 추상성의 한계에 대해서 알고 있다. 프랑스나 영국, 독일에서의 인정 관념은 앞서 언급한 라 로슈푸코와 루소, 흄과 스미스, 칸트와 피히테, 헤겔 등과 같은 사상가들의 주장으로 전부 설명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이들의 철학을 모두 인정 관념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호네트는 위와 같이 각각의 인정 관념의 특징들로부터 인정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히기 위해서 인정 관념을 세 가지 패러다임으로 유형화한다. 우선 인정의 첫 번째 패러다임은 앞서 본 프랑스의 인정 관념에서 본 것처럼, 인간이 사회적으로 높게 평가되는 속성을 욕구하며, 이를 공개적으로 확인받고자 하는 경우처럼, 여기서 인정은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속성을 주체에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인정의 두 번째 패러다임은 영국의 경우에서 본 것처럼, 인간이 공동체에서 동료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는 경우인데, 이때 인정은 주체와 그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동의를 의미한다. 인정의 세 번째 패러다임은 독일의 인정 관념에서 본 것처럼 상호적인 도덕적 자기 제한을 의미한다.
호네트는 이렇게 인정을 세 가지 패러다임으로 유형화한 이후에 인정의 세 패러다임 사이의 관계를 묻는다. 일견 각각의 패러다임에서 인정이 상이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비교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호네트는 이러한 인정의 세 가지 패러다임들을 보완적인 관계로 볼 것을 제안한다. 호네트의 전략은 하나의 인정 패러다임을 중심으로 다른 인정 패러다임을 통합해나가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는 독일 관념론에서 유래한 인정 패러다임을 토대로 이것들을 통합하고자 시도한다.
호네트는 독일의 인정 이해와 영국의 인정 이해를 통합하는 것은 비교적 쉬워보이며, 이를 통해 헤겔의 인정이론에서 부족한 부분, 즉 “어떤 동기에 의해 그리고 어떤 심리 내적 과정을 통해 개인들이 고동으로 승인한 규범을 내면화하기를 배우는지”(235)에 대해 더 잘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우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정의 세 가지 패러다임을 비교 및 종합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이 프랑스에서의 인정 이해이기 때문이다. 이는 프랑스에서 인정이 대게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과 라 로슈푸코와 루소의 경우와 버틀러나 알튀세르 경우와 같이 부정적 인정 개념 안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점 때문이다. 호네트가 보기에, 이미 본 것처럼 루소는 아무르 프로프르의 병리적 현상을 지적하고 있는데, 헤겔 역시 직업 조합의 구성원이 되지 못한 사람들의 반응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어떤 자질을 과시하거나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더 문제는 알튀세르에 이르러서 부정적 의미가 더 강해진 인정 개념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알튀세르에게 인정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작동하는 핵심 메커니즘이고, 단지 지배적 질서를 안정화시키고 재생산하는데 기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네트는 여전히 헤겔의 인정이론에 알튀세르의 부정적 인정 이해가 보완할 수 있는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헤겔은 정신과 역사를 통한 자연의 극복을 주장하고 있는 것에 반해, 헤겔에게서 나타나는 남성중심주의와 여성에 대한 가치절하, 근대적 결혼제도에 관한 논의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서로를 상호 인정하며, 기존의 규범을 의문에 붙일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헤겔에게서 여성은 전혀 그런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이는 상호주관적 인정이라는 규범에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즉 정신적인 것의 외부에 있는 일종의 자연과 같은 것이다. 헤겔에게서는 항상 극복되어야할 대상이었던 자연이 여기서는 가족, 결혼, 여성에 대한 논의의 근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호네트는 헤겔의 예가 보여주는 것처럼 “문화로 여겨져야 할 것이 잘못하여 자연으로 경험되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야 한다”고 말하며, 여기서 알튀세르의 논의가 단지 우연적인 속성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자연적으로 주어진 속성으로, 변화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지를 설명할 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호네트는 알튀세르가 말하는 호명을 통해 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어떤 속성이 부여되는데, 이것의 의례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자연적으로 주어진 속성이라는 가상이 생겨난다고 말하며, 오랜 시간 이루어진 성별, 인종 등과 같은 분류 관행의 루핑 효과와 같은 것, 혹은 헤게모니적인 언어 사용 방식으로 설명한다. 즉 호네트가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이미 확립된 인정 관계에서 지배의 지속이라는 문제적 지점”(258)에서 두 이론적 전통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와 인정의 문제는 조금 더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호네트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와 인정, 호명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구성된 것이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오인되는 것이 극복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때 호네트는 호명을 통한 인종, 성별 등 특정한 속성의 부여와 이것의 의례적, 관습적 지속 속에서 오인이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인정, 호명이 호네트가 말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알튀세르는 이것들을 전혀 다른 곳에 위치시킨다. 알튀세르에게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와 인정, 호명은 단순히 반복과 관습화를 통해 생겨난 허위의식이나 오인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의 재생산 메커니즘의 중심부에 놓여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인정은 단순히 허위의식의 해체나 오인된 것에 대한 재인식고 같은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고, 오히려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적 질서와 제도들이라는 육신을 가지고 있는 문제기 때문에, 호네트가 말하는 사회적 폐쇄나 배제에 대한 극복 혹은 논증적 폐쇄에 대한 극복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데올로기적 인정은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성격과 오인에 대한 극복과 더불어 이데올로기적 인정에 신체성을 제공하는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적 질서의 해체와 함께 가야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여기서 이런 거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호네트는 『인정투쟁』에서 인정이론을 제시한 이후, 최근 이데올로기적 인정에 관한 문제는 물론이고 여기서 다룬 『인정 : 하나의 유럽 사상사』에서는 지역적, 사상적 전통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인정 관념에 대한 고찰과 이를 자신의 인정이론의 틀 안으로 통합하고자 하는 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자들과 사상들과도 대결하며 인정이론을 확장시키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호네트의 다음 저작이 기대되는 이유고, 다음에 들려준 그의 답변이 기대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말로 읽을 수 있는 호네트의 대표작은 『인정투쟁』(이현재, 문성훈 역, 사월의책, 2015), 『분배냐, 인정이냐』(김원식, 문성훈 역, 사월의책, 2014), 『비규정성의 고통』(이행남 역, 그린비 2017), 『물화』(강병호 역, 나남출판, 2015), 『사회주의 재발명』(문성훈 역, 사월의책, 2016), 그리고 『인정 : 하나의 유렵 사상사』(강병호 역, 나남출판, 2021)이 있다. [본문으로]
Honneth, A. (2007). Recognition as Ideology. in Van den Brink, B. & Owen, D.(ed.), Recognition and power: Axel Honneth and the tradition of critical social the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 [본문으로]
강병호는 Achtung을 ‘존중’으로 번역하는데, 통상 우리나라에서는 ‘존경’으로 번역된다. [본문으로]
강병호는 피히테의 Aufforderung을 ‘요청’으로 번역하는데, 이는 칸트의 요청(Postulat) 개념과 구분되기 때문에,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김준수의 『승인이론』(용의숲, 2015)에서의 번역에 따라 ‘촉구’로 번역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