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와 인종적 상상계: 내러티브의 정치적 힘>
마리 부트(Marie Wuth)
번역: 김강기명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In: “Spinoza after Politics”: Dan Taylor, Gil Morejon, Marie Wuth, and JackStetter, https://www.thephilosopher1923.org/post/spinoza-after-politics
스피노자의 정치학 논고들과 『윤리학』에서의 정서 및 지식 이론은 공동체 생활 형성에 있어 내러티브의 영향력 있는 역할을 보여준다. 상상력에서 비롯된 내러티브는 세계에서 우리 자신을 방향 잡고 공존을 조직하는 데 중요하며, 이는 근본적인 정치적 과제이다. 내러티브는 시간과 공간을 구조화하고, 과거, 현재, 미래에 의미를 부여하며, 우리의 경험을 틀 짓고 타인, 역사, 장소, 제도와의 관계를 형성한다. 스피노자와 프란츠 파농을 대화로 이끌어냄으로써 내러티브의 정치적 잠재력이 부각되며, 포함과 배제의 힘이 드러난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힘을 ‘인종’과 관련하여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인종화에 대한 파농의 통찰은 억압적 사회 구조의 구축과 영속화에 있어 내러티브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인다. 스피노자와 파농 모두 내러티브가 지닌 구조적 무력화(disempowerment) 및 상호적, 포함적 역량강화(empowerment)의 잠재성을 조명한다.
1. 스피노자의 상상력과 내러티브
내러티브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안내한다. 『윤리학』에서 스피노자에 따르면, 내러티브는 우리 상상력의 쓰고도 단 열매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세 가지 지식 형태 중 첫 번째이다. 우리의 이해는 상상력 외에도 이성과 직관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스피노자의 상상력 이해는 인간 정신의 대상이 인간 신체이며, 인간 정신이 신체의 변용에 대한 관념을 가진다는 주장에 기초한다. 이러한 신체 인식의 형태가 바로 상상력의 지식이다.
모이라 개튼스와 제네비브 로이드는 그들의 저서 『집단적 상상: 과거와 현재의 스피노자』에서 상상력을 “정신과 신체가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만나는 것”이라고 적절히 묘사한다. 세 가지 지식 형태 중 상상력은 정서와 경험에 가장 밀접하게 얽혀 있다. 『윤리학』 제2부 정리 40에서 스피노자는 우리가 첫 번째 종류의 지식을 “지성에 대해 혼란스럽고 질서 없이 표상된 개별적인 사물들로부터” 그리고 “기호들, 예를 들어 어떤 것들을 듣거나 읽었다는 사실로부터” 얻는다고 설명한다. 우리 상상력의 관념들은 과거와 현재의 경험과 지각의 이미지들이다. 이들은 우리 신체가 주변 세계에 반응하고 연결되는 방식을 포착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상상할 때, 우리는 다른 이들과 함께 우리 자신을 어떻게 느끼고 경험하는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피노자가 정리 41에서 강조하듯이, “우리의 상상력에는 부적합한 모든 관념들이 속한다”. 이러한 부적합성의 이유는 우리의 정서적 관계와 상호작용에 있다. 우리가 상상할 때, 우리의 관념들은 항상 우리 정신의 고유한 대상인 인간 신체 이상을 포함한다. 이들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과 사물을 포함하지만, 혼란스럽고 불분명한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상상력은 우리의 정서 - 우리의 욕망, 기쁨, 슬픔 - 와 일치하며, 이는 우리의 힘의 증가 또는 감소를 나타낸다. 다시 말해, 상상력은 우리의 필요와 욕구에 대한 인식이다. 이는 우리의 관계와 힘에 대해 배우는 데 핵심적이며, 이것이 바로 부적합함에도 불구하고 상상력이 우리의 공존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인 이유이다.
내러티브는 상상력의 중심에 있다. 내러티브는 과거의 이야기와 묘사, 우리가 일어났다고 믿거나 경험했다고 기억하는 것들의 묘사이다. 실제로 스피노자에게 기억하기, 묘사하기, 표현하기는 경험에 기반을 두며 모두 상상력의 활동이다. 내러티브는 과거의 이미지를 제공하며, 상상적 근원을 고려할 때 이는 불완전하고 부적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 자신, 우리의 경험, 우리의 관계, 세계 속 우리의 위치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내러티브를 통해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 결국 내러티브의 목적은 예시적인 행위를 다시 말함으로써, 격려나 경고로서 예를 제시함으로써 안내하는 것이다. 이들은 우리가 세계를 탐험하고 다른 이들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형성한다. 따라서 마이클 로젠탈이 관찰했듯이, 내러티브는 개인과 집단의 욕망과 인내를 추구하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신학정치론』에서 스피노자는 성서 내러티브의 설득력과 사회정치적 영향을 보여줌으로써 이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그는 이들이 사람들이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조직하는 데 미치는 영향을 지적한다. 스피노자가 보여주듯, 내러티브는 복종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는 수단이다.
더 일반적인 용어로, 내러티브는 정서적 애착을 만들고 우리의 정서적 관계를 형성한다.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 17장에서 히브리 국가의 역사를 다시 말하면서 이를 묘사한다. 그는 히브리인들의 신에 의해 선택받았다는 확신, 즉 그들의 국가 내러티브의 초석이 신, 국가, 동료 시민들에 대한 확고한 경건함과 사랑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한다. 그의 논의는 특정 역사에 호소하는 내러티브가 어떻게 제도, 다른 존재들에 대한 정서적 유대를 만들고 현재에 중요한 정치-도덕적 자세를 배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수잔 제임스가 그녀의 저서 『스피노자,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에서 적절히 보여주듯이, 내러티브는 과거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지만, 이 이야기들은 현재의 정치가 구성되는 방식의 중심에 있다.
스피노자의 탐구는 또한 내러티브의 내재적 모호성과 양가성을 드러내며, 이는 정치체의 안정성과 불안정성 모두에 기여한다. 히브리 국가의 예를 들어, 그는 그들의 국가 내러티브가 어떻게 사랑과 단결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외부인에 대한 증오와 배타적 경계를 생성했는지를 보여준다. 내러티브는 역사적 기록을 형성하고, 권력 역학을 반영하며, 권위를 지지하는 상상적 장치로 기능한다. 이들은 우리를 둘러싼 역사와 세계의 한 버전 또는 설명을 묘사하지만, 반드시 유일한 가능한 버전은 아니다.
따라서 지배적인 정치적 의제의 일부인 헤게모니적 내러티브와 전자에 의해 배제되거나 무시되는 대항 내러티브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구별은 내러티브가 본질적으로 경합되는 것이며, 한 이야기가 말해질 때마다 다른 내러티브들이 침묵되고 말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러한 배제적 관행은 내러티브 내에서 개인과 집단을 추방함(displace)으로써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국가적 자기 표현으로 기능하는 헤게모니적 내러티브는 시민 질서를 강화하지만, 동시에 그 세계관에 반하는 묘사를 억압한다. 따라서 내러티브가 우리가 세계에서 자리를 찾고 주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이들은 또한 사람들과 집단을 주변화하고 억압할 수 있으며, 그들을 공간과 시간 속에서 추방시킬 수 있다. 인종적 상상계는 헤게모니적 내러티브에 내재된 이러한 종류의 추방 메커니즘의 한 구성이다.
2. 인종적 상상계
프란츠 파농의 저작은 내러티브가 어떻게 집단의 탈중심화와 주변화를 위한 정치적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밝힌다. 내러티브는 기억과 이야기, 그리고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과거의 재해석과 재구성을 통해 억압과 탄압의 장소가 될 수 있다. 파농에 따르면, 인종화 과정 - 인종이 구성되는 역사적, 인식론적, 사회적 과정으로서 - 은 집단적 인종적 상상계에 의해 뒷받침되고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이는 식민주의의 여파로 공동체의 모든 주체들이 공유한다.
파농을 통해 우리는 인종적 상상계를 상상력에 대한 식민 체제의 각인 또는 상상력의 특정한 식민적 구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상상력에 대한 개념화는 다르지만, 스피노자와 파농 모두 이를 기본적인 참조 또는 지식의 형태로 원용한다. 그들은 “상상계”와 “상상력”이라는 용어를 “명료성”과 대조하여 사용하며, 이들을 허구적이거나 부적합한 것의 지표로 식별한다. 중요하게도, 스피노자와 파농에게 상상적 관념들은 신체를 조직하고 방향 짓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내러티브의 잠재력으로 돌아가서, 파농은 인종적 상상계가 내러티브를 포함하거나 배제하는 정도를 드러낸다 - 이는 헤게모니적 내러티브와 대항 내러티브 사이의 상호작용과 유사하다. 파농은 식민성이 인종적 상상계에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을 보여주며, 백인 역사적 내러티브가 어떻게 시간과 공간 속에서 비백인 주체들을 주변화함으로써 경험과 존재를 형성하는지를 설명한다. 인종적 상상계에 내재된 이러한 시간적, 공간적 추방은 이전의 역사를 훼손 하고, 내러티브를 강요하거나 제거함으로써 집단과 문화를 그들의 과거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파농에 따르면, 반흑인 인종주의에 뿌리를 두고 백인 문화와 역사에 배타적인 지배적 인종적 상상계는 인종의 구축, 합리화, 자연화를 용이하게 한다. 이 상상계는 흑인 내러티브의 가능성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비백인 주체들의 참조 틀을 분열시킨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파농은 식민화된 민족의 관습과 그들이 참조하는 기관들이 “자신의 것을 강요한 새로운 문명과 모순되기 때문에 폐지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백인의 시선을 마주한 순간, 그의 신체성이 공격받고, 참조 틀이 분열되며,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 공간적, 시간적 세계 한가운데서 그의 흑인성, 그의 흑인 신체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파농이 경험하는 신체적 변형은 본질적으로 모순적이다. 한편으로는 그를 둘러싼 공간적, 시간적 백인 세계에서 자신의 신체를 위치시킬 가능성이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신체가 공간과 시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부담을 느낀다. 백인의 시선을 통한 이러한 변형과 분열은 지속적인 효과를 가지며, 과거와 현재, 여기와 저기를 구조화함으로써 사유하는 신체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 파농이 묘사하는 식민적 지속은 인종에 대한 백인 내러티브, 폭력적인 미래와 과거가 그에게 강요됨에 따라 그의 신체에 무겁게 짓누른다.
파농의 텍스트는 신체가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고 느끼는지, 내러티브가 어떻게 신체의 표면을 순환하고, 피부를 통과하며, 개인의 정서적 성향, 즉 신체가 영향을 받고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식을 형성하는지를 보여준다. 파농이 묘사하듯이, 지속되는 분열의 순간은 자아가 신체와 연결되고 현재에 위치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는 자신의 것이 아닌 과거, 즉 백인 내러티브의 일부이자 인종화된 세계의 구성 속에 존재하는 느낌을 묘사한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후반부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너무 늦었다. 모든 것이 예측되고, 발견되고, 증명되고, 이용되었다. 내 떨리는 손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자원은 고갈되었다. 너무 늦었다!”.
3. 내러티브의 힘과 정치
스피노자와 파농의 정치에서의 내러티브의 힘과 사용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몇 가지 결과가 따른다. 둘 다 내러티브의 정치적 비중을 보여주며, 이들이 공존과 사회 구조를 조직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내러티브는 상상적 지식의 통로 역할을 하며, 경험, 관계, 대인 역학을 형성한다. 파농과 스피노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내러티브가 결코 무고하거나,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본질적으로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헤게모니적 내러티브와 대항 내러티브 사이의 제안된 구별은 이러한 현실을 부각시키는 데 유용하며, 내러티브의 상상적 기원과 정치적 본질에 대해 빛을 비춘다. 대항 내러티브의 개념은 정치적 변화와 내러티브 사이의 연관성을 고려하고 내러티브가 어느 정도로 기존 구조를 지지할 뿐만 아니라 자유와 해방적 정치 변화의 수단이 될 수 있는지를 묻을 때 특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파농을 참조하여 식민지 및 후식민지 사회에서 헤게모니적 백인 내러티브에 대한 대항 내러티브로서 흑인 내러티브를 고려할 수 있다. 대항 내러티브의 힘은 신체를 공간과 시간을 통해 다르게 탐색하고 지배적인 헤게모니적 내러티브에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있다: 내러티브는 구조적 무력화와 일방적 권한 부여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미학적이고 상상적인 도구로서 다른 과거와 세계를 묘사함으로써 관계와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이야기를 말함으로써 억압적이고 위험한 정치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내러티브, 특히 대항 내러티브는 사회적 기울어짐을 이해하고, 질문을 장려하며, 행위성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제안은 특히 스피노자의 틀 내에선 불안정한데, 대항 내러티브와 연결된 정치적 변화에 대한 열망은 또한 안정성의 필요성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의 한 기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헤게모니적 질서는 그것을 해체하려는 대항 헤게모니적 실천에 의해 도전받을 수 있다. 더욱이 모든 도전이 파괴적인 개입이나 해체 사건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며, 권력을 유지하고 번성하기 위한 체제의 전략의 일부일 수 있다. 실제로 대항 내러티브는 스피노자가 우려하는 정치 체제의 퇴행적 경향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오늘날 정치 공동체의 가장 시급한 도전은 인종적 상상계에 내재되어 있고 진행 중인 식민성에 얽혀 있다. 정치에서 내러티브와 상상력의 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스피노자와 함께 파농을 읽는 것은 우리가 구조적 무력화 대신 상호 권한 부여를 통해 어떻게 함께 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내러티브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Marie Wuth는 함부르크 대학교의 박사후 연구원이다. 그녀의 연구는 근대 초기 철학, 페미니스트 철학, 정치 및 사회 철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녀는 스피노자, 행위성, 그리고 정치적인 것의 문제에 관한 박사 논문을 작성했으며, 현재는 국가 이론에서 자연과 정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