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서문) 팔레스타인 국가 독립 선언문은 1988년 11월 15일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입법 기관인 팔레스타인 국가평의회에 의해 채택되었다. 선언문은 마흐무드 다르위시에 의해 작성되었고, 에드워드 사이드가 이를 영어로 번역하였다. 본 번역문은 사이드의 영어 번역을 바탕으로 옮긴 것이다. 다르위시와 사이드 모두 1980년대 까지 PLO에 참여하였고, 이 선언문을 낭독했던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를 지지하였다.
1964년 아랍연맹에 의해 창설된 PLO는 사이드의 평가에 따르자면, 팔레스타인 민중해방의 에너지를 결집시키고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엇갈린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시오니스트에 의해 왜곡된 팔레스타인 현실을 제대로 해석하고 대변할 수 있는 대표기구였다. 하지만 PLO가 팔레스타인 자결권을 인정하지 않고 사실상 이스라엘군의 재배치를 의미하는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에 동의하면서, 다르위시와 사이드 모두 PLO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떠나게 된다.
독립 선언문의 “저자”와 “번역자”가 선언문을 채택한 PLO를 떠나고, 국가 독립 선언이 실제적인 국가 건설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선언문은 기만이자 허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언문에 기입된 “독립 선언”이라는 발화행위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도래할 약속으로 남아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 국가 독립 선언은 단지 국제정치적인 차원에서의 국민국가의 실현만이 아닌,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고자 하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열망이 담긴 약속의 수행문이다. 절멸적인 위기에 처해 있는 팔레스타인의 현재 상황에서 과거의 이 선언문은 이스라엘의 국가 폭력과 이를 방치하는 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맞서는, 국제적인 연대를 호소하는 오늘날의 선언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자비롭고 긍휼하신 신의 이름으로,
세 개의 유일신 신앙의 땅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 아랍 민중(people)이 탄생한 곳으로, 그 땅에서 그들은 성장하고 발전했으며 탁월함을 발휘하였다. 그리하여 팔레스타인 아랍 민중은 자신과 땅, 역사 사이의 영원한 결합을 스스로 확보했다.
저 역사 속에서 팔레스타인 아랍 민중은 결연히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했고, 다른 이들이 기도한 침략에 맞서 상상할 수 없을 수준까지 방어해냈으며, 강대국들과 문명들이 합쳐지는 고지대에 자리한 팔레스타인의 태곳적 찬란한 장소는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 이 모든 것들에 지장이 생겼고, 그건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정치적 독립을 박탈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 민중 사이의 불멸하는 연결은 땅에는 그 특성을, 민중에게는 그 민족적 기풍을 확립하였다.
팔레스타인 아랍 민중은 다양하고 풍부한 유산에서 영감을 받아 전개된 일련의 문명과 문화에서 자양분을 얻었으며, 자신과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땅 사이의 결합을 공고히 함으로써 그 위상을 높였다. 창조주를 찬미하고 연민과 평화를 찬양하는 것이야말로 팔레스타인의 진정한 메시지라는 외침이 사원, 교회, 모스크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대대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해방과 고향땅을 위한 용감한 전투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쳤다. 예의 그 민중 반란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으며, 이는 민족 독립을 향한 의지의 영웅적 구현이었다. 그리하여 팔레스타인 아랍 민중은 견뎌내기 위한, 그리고 승리하기 위한 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다.
현대에 들어서 모두에게 공평한 규범과 가치를 지닌 새로운 가치 질서가 선포되었을 때, 팔레스타인 아랍 민중은 지역의 적대적인 무리와 외국의 강대국들에 의해 다른 모든 민중의 운명으로부터 배제되었다. 독자적인 정의는 세계 역사를 자신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이끌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이미 그 본체가 훼손당한 데다, “팔레스타인은 사람이 없는 땅이었다”라는 거짓말을 유포하는 것에 바탕으로 둔 또 다른 형태의 점령에도 굴복당했다. 이 관념은 세계의 일부 사람들에 의해 거짓으로 꾸며진 것이다. 반면, 국제 사회는 “국제연맹 규약 22조”(article 22 of the Covenant of the League of Nations, 1919)와 “로잔 조약”(Treaty of Lausanne, 1923)에서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모든 아랍 영토가 옛 오스만 제국에 속한 지역들이었으며, 이들에게 잠정적으로 독립 국가로서의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고 인정한 바 있다.
팔레스타인을 아랍과 유대 두 국가로 분할 한 “유엔 총회 결의 181호”(U.N. General Assembly Resolution 181, 1947)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이산(離散)을 초래하고 자결권을 박탈하는 역사적 부정의를 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팔레스타인 아랍 민중의 주권을 보장하는 국제적 정당성의 조건을 제공하는 건 바로 이 결의안이다.
이스라엘군은 조직된 테러를 동원하여 단계적으로 팔레스타인과 다른 아랍 영토 일부를 점령하고, 팔레스타인 민간인 거주자 대다수를 선조들의 고향에서 강제로 몰수하고 추방했다. 예속된 흔적으로서 고향땅에 남아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은 박해받았으며 민족적 삶의 파괴를 감내해야 했다.
이로써 국제적 정당성의 원칙이 위반되었다. 유엔 헌장과 결의안은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귀환권, 독립권, 영토와 고향땅에 대한 주권 등을 포함한 민족적 권리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원칙이 훼손된 것이다.
팔레스타인과 그 주변 지역, 멀리 떨어진 망명지에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고 귀환과 독립의 권리에 대한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다. 점령과 학살, 이산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자의식과 정치적 정체성을 약화시키지 못했으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단념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정체성은 오랜 시련과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더욱 굳건하고 확고해졌다. 팔레스타인 민족의 집단적 의지는 세계 공동체 전체는 물론 관련 지역과 국제기구가 인정하는 유일한 합법적인 대표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라는 정치적 구현체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에 대한 확신과 아랍 민족의 합의 및 국제적 정당성의 토대 위에 선 PLO는 위대한 민중들의 캠페인을 주도하였고, 그들로부터 형성되었다.
점령된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그 범위와 위력이 점점 더 강렬해지고 있는 대규모 민족 봉기, 인티파다와 고향땅 밖 난민 캠프에서의 거침없는 저항은 팔레스타인의 진실과 권리에 대한 의식을 한층 더 높은 이해와 실행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드디어 마침내 기만과 부정의 시대 전체에 드리운 장막이 걷혔다. 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기 위해 너무 오랫동안 신화와 테러에만 의존했던 공식적인 이스라엘의 정신을 포위했다. 따라서 인티파다와 그것의 돌이킬 수 없는 혁명적 충동으로 인해,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결정적인 국면에 이르렀다.
이제 자연적, 역사적, 법적 권리의 미덕과 고향땅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고자 자신을 바친 선대들의 희생에 맹세컨대,
1947년 이후 유엔 결의안을 통해 승인된 국제적 정당성의 권위에 의거해 아랍 정상 회의에서 채택한 결의안을 수행하는 데 있어,
그리고 팔레스타인 아랍 민중이 자결과 정치적 독립, 영토에 대한 주권의 권리를 행사하는 데 있어,
팔레스타인 국가평의회는 신의 이름으로, 그리고 팔레스타인 아랍 민중의 이름으로, 팔레스타인 영토와 그 수도 예루살렘(알-쿠드스 아쉬-샤리) 위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할 것을 선포한다.
팔레스타인 국가는 그들이 어디에 있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국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집단적,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을 향유하고 완전한 평등권을 추구하기 위한 국가다. 팔레스타인 국가에선 표현의 자유와 정당 결성의 자유에 기반한 의회 민주주의 통치 시스템을 통해 그들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과 인간 존엄성이 보호될 것이다. 다수자의 결정에 소수자가 따라야 하는 대신, 소수자의 권리는 다수로부터 정당하게 존중받을 것이다. 통치는 사회 정의와 평등, 그리고 인종, 종교, 피부색이나 성별을 이유로 한 남성 또는 여성의 공적 권리에 대한 차별 금지의 원칙, 법치와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는 헌법의 수호에 기반할 것이다. 따라서 이상의 원칙들은 관용과 종교적 공존이라는 팔레스타인의 오랜 정신적, 문명적 유산에서 벗어나는 걸 용인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국가는 아랍 국가로서 아랍 민족과 불가결하고 불가분한 일부로, 그 유산과 문명에서 아랍 민족과 하나를 이루며, 해방과 진보, 민주주의와 통일에 대한 열망에서도 그들과 함께한다. 팔레스타인 국가는 아랍 국가 간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아랍 국가 연맹 헌장(the Charter of the League of Arab States)을 준수할 의무가 있음을 확언한다. 또한, 아랍 동포들에게 국가 실재성의 출현을 굳건히 하고 심화할 것을, 잠재력을 동원할 것을, 이스라엘 점령 종식을 목표로 하는 노력들을 강화할 것을 촉구한다.
팔레스타인 국가는 유엔의 원칙과 목적, 그리고 세계인권선언에 헌신할 것을 선언한다. 또한, 비동맹운동의 원칙과 정책에 대해 헌신할 것을 선언한다.
나아가 팔레스타인 국가는 평화 공존의 원칙을 준수하며, 자신을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로 천명한다. 정의와 권리 존중을 바탕으로 영구적인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모든 국가와 민중들과 함께 협력한다. 그럼으로써 안녕을 위한 인류의 잠재력을 보장하고 탁월함을 향한 진심 어린 경쟁을 유지하도록 할 것이며, 미래에 대한 확신을 주어 의로운 이들, 정의만이 유일하게 의지할 곳인 사람들이 두려움을 떨쳐 내도록 할 것이다.
사랑과 평화의 땅에서 평화를 위한 투쟁의 맥락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는 유엔이 팔레스타인 아랍 민중과 그들의 고향땅에 대해 특별한 책임을 질 것을 촉구한다.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민중과 국가들에게 팔레스타인 국가의 목표 달성을 지원하고, 이 나라에 안전을 제공하며, 이 나라의 민중들이 겪는 비극을 완화하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을 종식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을 촉구한다.
이와 함께, 팔레스타인 국가는 유엔 헌장과 결의안에 따라 평화적 수단에 의한 지역 및 국제 분쟁 해결을 믿는다고 선포한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 국가는 그 나라의 영토 보존과 독립을 수호할 자연적 권리의 침해와 더불어, 영토 보존이나 정치적 독립에 적대하는 무력 사용, 폭력, 테러리즘을 거부한다. 마찬가지로 그것들을 사용해 다른 국가의 영토 보존을 적대시하는 것 또한 거부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새벽의 문턱에 서 있는 1988년 11월 15일, 다른 모든 날과는 다른 이날에, 우리는 모든 존경과 겸허함을 담아, 고향땅을 위한 헌신의 순수함으로 우리 하늘을 밝히고 우리 땅에 생명을 불어넣은,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쓰러진 이들의 신성한 영령들에게 고개 숙여 삼가 경의를 표한다. 수용소, 이산, 망명과의 싸움을 견디고 분투해온 사람들, 자유의 기준을 지탱해온 사람들, 어린이, 노인, 청소년과 포로, 구금자, 부상자 그리고 캠프, 마을, 도시에서 우리의 신성한 토양과 맺은 저 모든 인연이 입증된 사람들, 이 모든 축복받은 인티파다에서 발산하는 빛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고양되고 밝게 빛난다. 우리는 생계와 삶의 수호자이자 우리 민중의 영원한 불꽃을 지키는 용감한 팔레스타인 여성에게 특별한 경의를 표한다. 우리의 성스러운 순교자들의 영혼과 팔레스타인 아랍 민중 전체를 위해, 저 우리의 투쟁은 점령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며, 우리의 주권과 독립의 토대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위대한 민중들에게 팔레스타인의 깃발 아래에 결집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수호할 것을 청한다. 그럼으로써 그 깃발은 자유인의 고향땅인 바로 그 고향땅에서, 지금 그리고 영원히 우리의 자유와 존엄의 상징이 될 것이다.
자비롭고 긍휼하신 신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오 왕국의 주인이신 신이시여. 당신께서 주려는 자에게 왕국을 주시고 당신께서 빼앗으려는 자에게서 왕국을 빼앗으시며, 당신께서 높이려는 자를 높이시고 당신께서 낮추려는 자를 낮추시니. 당신의 손에 선이 있으며,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권능이 있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