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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연재완료/이상한 가역반응4

고정희의 시대착오 고정희의 시대착오 길혜민 | 국문학연구자 1995년 낸시 프레이저는 「재분배에서 인정으로? -‘포스트사회주의’ 시대 정의의 딜레마」라는 글을 통해서 젠더 정의에 있어서 재분배와 인정의 두 축 중에서 무엇을 우선으로 하여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포스트사회주의’라는 시간을 당면한 상황에서 인권 존중과 평등권을 모두 충족시키기엔 재분배-인정 양쪽의 이해관계가 상호 모순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꽤나 까다로운 논의가 되어버립니다. 이 글에서 낸시 프레이저는 긍정적 개선책/변혁적 개선책이라는 문제 접근 방식을 제시하고 이에 따라 재분배와 인정이 어떤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지 일종의 ‘사고실험’을 진행합니다. 이 작업물이 발표된 이후, 주디스 버틀러, 리처드 로티, 아이리스 매리언.. 2017. 10. 25.
‘이생망’과 시간 ‘이생망’과 시간 길혜민|국문학 연구자 신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끝, 시작과 나중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발생이라는 현상의 원인이며 발생의 결과가 된다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존재에게 있어서 ‘중간’이라는 지대는 어떤 것일까요? 그것도 또한 신의 영역일까요? 아니면 신이 버린 영역일까요? 저는 오늘 ‘중간’이라는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신이 버렸는지 아님 그 안에 신이 있는지, 언제 시작됐는지도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어느새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중간’ 말입니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지구에서 숨이라는 것이 붙어있는 존재라면 대개가 ‘이생망’이라는 말을 체험하는 시절을 보내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는 나날들입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요. 그냥 매일을.. 2017. 9. 11.
돼지발정제를 먹이는 시간 돼지발정제를 먹이는 시간 길혜민 | 국문학연구자 1. 축축. 이 말에는 어떤 경험이 연결되십니까. 무엇보다도 저는 불결함과 불길함이 결합된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촉촉도 아닌 축축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아도 이끼가 자랄 것 같이 젖은 공기, 낮과 밤을 알 수 없는 폐쇄성, 무드등이 건물을 얼룩처럼 장식하는 장소, 돌이킬 수 없는 세계에 들어섰다는 예감. 모텔. 21살 때, 처음으로 “제천국제영화음악제”에 참가하느라 들렀던 ‘발렌타인모텔’의 인상은 대략 그랬고 지금도 축축함이라는 말과 관련된 연상은 이 장소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제 환상의 젖줄 같았던 영화, 에서 보았던 커다란 조개 모형의 침대가 있을 것 같았던 모텔의 연관어는 ‘축축’으로 바뀌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문득 이 축축함에 대하여 다시 .. 2017. 7. 25.
<이상한 가역반응>을 시작합니다 을 시작합니다. 길혜민 | 국문학연구자 이상은 제가 알고 있는 이상한 시인들 중에서도 특히 이상함의 기원에 해당하는 작가입니다.이상 시집의 첫 번째 작품 제목은입니다.1931년도에 발표된 작품의 제목치고는 꽤나 현란하죠. 가역, 可逆되돌려본다는 뜻이겠죠.그런데 이상은 이 시에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표현합니다.더 이상은 평행하지 않은 것, 그래서 꼭 붙어버린 곡선에 대해서 말이죠.굴곡진 직선과 되돌려보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일까요.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해 무식한 제가 유추해보건대되돌아본다는 의식인 기억하기와 관련된 반응이 이상하다는 뜻 같습니다.과거를 떠올린다는 일이란 완전히 복원될 수 없는 기억을현재라는 시점을 끌어안고 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는 시차에 대한 시인의 판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후.. 2017.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