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필자가 참여한 4월 11일 <우크라이나와 한반도> 학술대회 논평문과 4월 22일 경상국립대학교 학술세미나 발표 과정에서 준비한 원고를 토대로 수정, 보완을 거쳐 작성한 것이다.]
들어가며: 서구중심주의 이후
철학계에서는 ‘서구중심주의 이후’라는 문제로 논쟁이 존재한다. 우리가 잘 아는 위대한 철학사의 전통들, 예컨대 칸트, 헤겔, 맑스는 모두 서구중심주의자들이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학자들이 이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에 대해 등장하는 흐름이 ‘반서구’의 관점을 추구하면서 ‘동양적인 것’ 내에서 서구를 극복할 수 있는 원리를 찾아야 한다는 또 하나의 강박에 노출될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예컨대 학계에는 서구의 민주주의, 인권, 자유 개념을 대체하는 정치공동체의 원리를 조선유학을 비롯한 동양적 세계관 내에서 찾으려는 시도들이 존재한다. 과연 서구보다 더 나은 민주주의 개념이 동양 사회에 존재했는가?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답변 자체가 아니라 답을 도출해가는 질문이 제기되는 구조나 과정에서 문제를 찾고 싶다. 즉 그것은 ‘모 아니면 도’ 식의 논리이거나, 심하게 말하면 ‘반서구의 물신주의’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을 전후로 국제관계나 외교안보 쪽에서도 유사한 논쟁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에 의문을 표해왔던 비주류 세력이 나토와 미국의 패권적 대외정책을 비판한 것에는 물론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그에 맞서 마치 현재의 러시아 푸틴 정권이나 중국의 시진핑 정권이 모종의 더 나은 가치와 질서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 역시 존재하는 것 같고, 그러한 시각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펼쳐진 침략과 학살에 대한 책임을 침략국에게 묻는 것을 주저하는 관점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국의 패권적 대외정책에 무비판적인 주류 학계와,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위선을 지적하며 푸틴이 느끼는 실질적 ‘안보위협’을 거론하면서 이번 전쟁의 책임이 러시아에 있지 않음을 주장하려는 비주류 모두 동전의 앞뒷면 같은 논쟁 구도를 형성한다. 이 양극단의 대립은 결국 모두 강대국 중심의 세계관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즉 주류적인 강대국들 사이의 거대한 체스게임만을 바라볼 뿐, 어떻게 그에 대한 민주적인 저항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칼 슈미트의 예외상태 개념(그리고 주권자의 교전권 옹호)에 맞서 발터 벤야민은 ‘진정한 예외상태’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는데, 지금 언급되는 이러한 강대국 헤게모니 중심의 사고방식 속에는 바로 이러한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다.
민주주의적 관점: 양비론을 넘어
이 때문에 전통적으로 침략전쟁에 반대해왔던 반전평화 입장의 지식인들에게서 확인되는 일련의 경향 역시 암묵적 양비론이다. 심지어 실질적으로 러시아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하는 입장도 존재한다. 예컨대 이런 논의들에서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꽃놀이패’(「우크라이나, 미국의 꽃놀이패?」, <한겨레>) 혹은 대리전을 치르는 ‘꼭두각시’로 묘사되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이나 나토 한 축, 러시아라는 또 다른 한 축 사이의 지정학적 경쟁만 보게 되면 물론 양비론으로 빠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것이 옳은 입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제3의 요소이자 결정적인 요소인 우크라이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 전쟁이 단순히 ‘국경을 넘어 침공했다’라는 실정법적인 국제법 위반이기 때문에 부당하다는 지적을 넘어, 근본적으로 우크라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이자 탄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현실주의자들이 주로 차용하는) 클라우제비츠의 명제는 러시아 측 논리를 대변하는 논거(‘전쟁도 정치의 연장이므로 러시아에도 일정한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이해되어야 한다. 즉 러시아는 전쟁이라는 (정치의 연장으로서의) 수단을 통해, 마이단 시위 이후 우크라이나 정치질서에 개입하고 있다. 목적도 수단도 모두 우크라이나 민주주의를 짓밟고 있다. 마이단 시위를 일으킨 우크라이나의 인민이라는 민주적 주체, 그리고 주권이라는 토대를 모두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1956년 헝가리 봉기 이후 개혁파 나지 임레 정부가 들어서자 모스크바는 탱크 1000대와 15만 명의 병력을 파견해 정부를 무너뜨리고 봉기를 진압했다. 1968년 개혁파 두브체크 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소련은 바르샤바 조약기구 5개국 20만 군대를 파견해 신생 정부를 무너뜨렸다. 이처럼 소비에트 시절에도 모스크바의 공산당 지도부는 자국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려는 위성국가에 군대를 보내 해당 국가의 자율적 개혁을 좌절시키는 폭력적 군사개입을 일삼았다. 최근 푸틴은 소비에트 체제의 긍정적 유산이 아닌 최악의 유산인 이러한 군사개입 조치들을 부활시키고 있다. 올 초 카자흐스탄에서 반정부 폭동이 일어나자 러시아가 평화유지군이라는 이름으로 병력을 파견하여, 러시아 군대가 직접 카자흐스탄 시위대를 진압한 것 역시 이러한 연상선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마이단 시위 이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군사침공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의 강대국이 주변국의 개혁과 민주화 열망을 가로막기 위해 군사침공을 감행한 제국주의적 군사행동이다.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
이를 부정하기 위해 푸틴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를 주장한다.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면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마이단 시위 역시 네오나치 세력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따라서 정당한 민주화 시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반론이 가능하다.
첫째, 마이단 시위에 네오나치 세력이 존재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들이 이 시위를 주도했고 이 시위의 본질이 네오나치즘에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의도적인 과장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큰 규모의 시위가 벌어지면 지배세력은 시위에 의심스러운 ‘배후세력’이 개입했다고 비난하는데, 마치 이런 논리가 되풀이되는 것 같다. 이러한 주장은 이 시위가 벌어진 본질적인 계기가 야누코비치 정권의 부패와 억압이었다는 점을 애써 무시하며, 주변적 현상을 부풀려 본말을 전도시킨다. 비유를 해보자.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 당시에 시위 초기 여중생들과 여고생들이 다수 시위에 참여했으며, 그들이 교복을 입고 시위에 나갔다가 경찰 폭력에 피를 흘리는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어 여론의 분노를 이끌어낸 적이 있다. 그러자 어느 순간 군복을 입은 예비역 남성들이 ‘경찰 폭력으로 구타당하는 소녀들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제식 동작으로 행진을 하면서 시위를 군사화하고, 경찰과 대치하면서 폭력을 주도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광우병 시위를 본질적으로 ‘예비역 남성 시위’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둘째, 수치상으로 보더라도 현재 우크라이나 국회에는 어떤 극우 백인우월주의 정당도 진입하지 못했다. 스보보다, 프라비 섹토르 모두 국회진입기준인 5% 득표를 하지 못한 원외정당일 뿐이다. 마이단 시위를 네오나치가 주도했더라면, 그 시위의 참여자들은 왜 정작 극우정당에 투표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러시아가 명분으로 내세운 아조우 연대의 경우 과거 백인우월주의 네오나치 성향을 보인 군사조직임이 분명하지만, 현재 정부군으로 편입된 이후에 이 단체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매우 줄어들었다는 증언이 여러 전문가들에게 나오고 있다.
둘째, 설사 러시아 푸틴 정부의 주장대로 마이단 시위가 네오나치 세력이 주도한 극우 시위였다고 하더라도 러시아가 이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 러시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극우 스킨헤드 대원들이 행동하고 있으며, 그 수치는 10만 이상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이번 전투에도 푸틴 최측근인 와그너 그룹을 비롯해 러시아 네오나치 세력이 참전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푸틴의 참모인 알렉산드르 두긴의 대러시아 쇼비니즘과 슬라브 민족주의 역시 극우적 세계관을 공유한다.
셋째로, 마이단 시위가 네오나치화되었으며, 우크라이나 정부 역시 네오나치 세력이 주도하고 있다는 푸틴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침공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만약 프랑스 대선에서 외국인 혐오 우익세력인 르 펜이 집권한다면, 인근 국가가 프랑스를 침공할 근거가 될 것인가? 참고로 푸틴은 오랫동안 르 펜을 지지해 왔다.
이처럼 우크라이나가 ‘네오나치화’되었다는 비난은 전혀 근거도 없고 명분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상대를 ‘나치’라는 언어로 악마화하는 러시아의 프로파간다는 그 폭력적 효과를 분명히 낳고 있다. 우크라이나 북부 등지에서 퇴각하던 러시아인들이 부차를 비롯해 수많은 지역들에서 비무장 민간인 학살과 납치, 고문, 성폭행을 일삼고 있다(일각에서는 이 사실관계 자체를 ‘서방의 프로파간다’일 뿐이라며 의심한다. 그러나 부차 학살은 ‘휴먼 라이츠 워치’나 <알 자지라> 등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비판적이었던 인권단체나 중동 언론도 사실로 확인한 바 있다). 전쟁터에 투입되는 병사들은 우크라이나가 ‘네오나치화’되었다는 프로파간다로 교육을 받았다. 이는 그들이 싸워야 할 대상이 서방의 후원을 받는 네오나치로 보이고, 따라서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제거해야 할 적으로 여기게 되는 효과를 만든다.모든 전쟁은 끔찍한 범죄를 낳지만, 상대를 악마화하는 프로파간다가 더해지면 그것의 폭력적 파급력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 마주하고 있는 학살의 메커니즘이다.
방어적으로 무장할 권리, 그러나 확전에 대한 신중함도
따라서 앞서 언급한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의 관점에서 사유하고 그러한 전통에 서 있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침략전쟁을 규탄하고 반대해야 한다. 그리고 침략군대의 논리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사태를 이해해야 한다. 즉 우크라이나의 아래로부터의 인민주권의 관점에서 침략을 규탄해야 한다.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의 결사항전이 벌어지는 이유는 그들이 민족주의 정치세력의 선동에 넘어가서인 것도, 젤렌스키 정부의 강제적 조치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현지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증언하듯, 피난, 민간인 구호, 그리고 도심 게릴라 등에서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조직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는 그들의 눈에 이번 전쟁이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위협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전쟁은 단순히 젤렌스키와 푸틴 (또는 바이든과 푸틴)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주권자 인민과 푸틴의 대결로 나타나고 있음(적어도 그러한 측면이 경험적으로 확인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시민사회는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의 방어권을 지지해야 한다. 예컨대 일각에서 주장하듯, 우크라이나가 영토의 일부를(지금 러시아는 돈바스와 마리우폴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남부지역으로 전선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에 넘겨주는 등 양보를 해서라도 협정을 맺고 교전을 끝내야 한다는 주장은 다른 상황에서라면 적절한 선택지일 수도 있겠으나, 지금의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그것은 무기를 내리고 항복하라는 요구로 들릴 것이고, 그것은 ‘국제연대’라는 이름에 부합하지 않는 관점일 것이다. 거꾸로, 우크라이나의 무장투쟁을 지지한다고 해서, 저항의 과도 군사화와 이로 인한 긴장의 확대를 낳을 요구들에 대해서도 신중해야 한다. 예컨대 3차 대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는 비행금지구역 설정도 그렇지만, 서방 국가들의 무기지원, 그것도 개전 초기 지원했던 방어적 수준의 무기뿐만 아니라, 러시아 영토를 역으로 침공할 가능성까지 있는(그렇게 될 경우 확전이 불가피하다) 전투기나 탱크 같은 중화기의 지원에 대해, 심지어 서방 국가들 자신의 명분 없는 재군사화(대표적 사례는 숄츠 총리가 이끄는 독일이다)에 대해서는 신중하면서도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나아가 우리는 푸틴 정부의 살인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개전 초기 많은 러시아 시민들이 반전시위를 벌였고 1만5천 명의 시민들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푸틴 정부가 반전 여론을 차단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고, 전쟁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배신자로 모는 프로파간다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대중적 반전운동이 폭발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러시아 내부에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제나 예의주시해야 하며, 푸틴의 잘못으로 인해 러시아 시민들 전체를 악마화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될 것이다.
푸틴을 넘어서는 레닌: 보편주의와 특수주의를 넘어
마지막으로 레닌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푸틴은 개전 직전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를 인정한 것이 레닌의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혹평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잊힌 ‘레닌’이라는 기표를 다시 소환해냈다. 그러면서 푸틴은 소비에트 체제가 초기에 남긴 가장 큰 공적을 부정하고, 제정 러시아와 관료화 이후 소비에트의 체제가 남긴 가장 억압적인 측면을 계승하고 있는데, 그것이 다름아닌 대러시아 쇼비니즘이다. 이를 관념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이 알렉산드르 두긴의 유라시아주의다. 그는 다극적 체제들의 공존을 주장하지만, 이는 결국은 서구에 반대하는 자기문명우월주의로 귀결되며,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유라시아 문명 공동체의 형성을 인근국가에 강요하는 패권주의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가 그 희생양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게 두긴이 말한 ‘비잔틴의 후예로서 러시아 문명’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두긴은 그람시가 말한 (지배 세력의) ‘유기적 지식인’이다. 그람시의 시대에 나치에게는 하이데거가, 무솔리니에게는 젠틸레가 있었듯이 말이다. 이들은 모두 서구적 근대성의 원리를 극복하기 위한 자문명의 행복했던 과거로 되돌아가자고 촉구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이를 위한 민주주의 탄압과 전쟁이었다.
다른 한 편에서는 이러한 지역 문명의 국수주의에 맞서 우리가 세계시민임을 상기시키는 자유주의적 규범외교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한계 역시 알고 있다. 규범외교의 관점은 대서양 자유주의의 가치를 ‘보편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보편화 역시 강요된 것이다. 미국이나 서방 국가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세계시민’으로서의 윤리적 책임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방식을 규범적 근거로 삼아, ‘불량국가’로 규정된 나라들을 제재하거나 침공해왔다. 따라서 그것은 현실적으로 ‘보편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뤄진 강대국 패권주의였으며, ‘세계시민주의적 제국주의’라고 불릴 수 있다.
따라서 세계시민주의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자유주의적 규범외교의 보편주의적 한계와 유라시아 문명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대슬라브 쇼비니즘의 억압적 특수주의를 모두 넘어서기 위해서는, 각 인민들의 주권적 자유에 기반을 둔 억압적이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국제주의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레닌이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을까?
푸틴이 비난한 바로 그 레닌은 역으로 우리에게 국제주의 전통의 사유가 갖는 중요성을 일깨운다. 1차대전을 종식시키고,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소수 민족 국가의 자결권을 인정하고, 소비에트 국가명칭에서 러시아를 빼는 등 대러시아 국수주의의 유혹을 거부하고 최소한의 국제주의적 자세를 유지했던 것이 바로 레닌의 가장 큰 업적이었다. 물론 러시아 혁명의 실패와 소비에트 체제의 권위주의화, 관료화 이후 이 유산은 소멸한다. 이런 관점에서 레닌은 여러 한계를 가진 끝내 실패한 혁명가였다. 레닌이 오늘날 국제주의의 새로운 발명에 대한 충분조건인 것 역시 아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1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바랬고, 이를 실현해냈으며, 러시아의 대국화에 반대했던 레닌의 민족자결주의, 국제주의 그리고 반전주의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정한 영감을 주고 있다. 푸틴이 반대했던 레닌 말이다. 그렇다면 푸틴과 두긴이 아니라, 그들에 의해 부정되고 비난받고 있는 레닌의 성찰이야말로 오늘의 우리가 뒤따를 수 있는 ‘러시아적’ 유산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