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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22년 3월 17일 라구람 G. 라잔이 Project Syndicate라는 매체에 기고한 "Economic Weapons of Mass Destruction" 칼럼을 박기형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이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막기 위해 전세계의 국가들은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미국이 주도하여 취해진 경제 제재는 평화를 되찾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까? 그럴 때, 경제 제재가 국제질서와 각국의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고 얼마나 될지, 나아가 국가 간에 또 다른 갈등과 긴장을 불러오진 않을지 등을 면밀하게 살피면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모색할 수 있는 국제협력의 가능성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비록 짧은 글이고 세계화에 대한 평가 등은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한 가운데서 중요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에 함께 나누고자 한다.


원문 링크: https://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economic-wmds-and-the-risk-of-deglobalization-by-raghuram-rajan-2022-03

  

 

대량살상무기, 경제 제재

 

 

라구람 G. 라잔(Raghuram G. Rajan) 

번역 박기형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러시아의 전쟁은 처벌받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스럽고 전면적인 경제 제재의 사용은 분명 정당하다. 그러나 장래에는 경제 제재라는 강력하고 새로운 도구들에 대해 적절히 통제를 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 제재라는 수단은 세계화와 세계화 덕분에 가능했던 번영을 역전시킬 수 있다.

 

전쟁은 끔찍하다.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전개되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이 살해되거나 그들의 집에서 쫓겨나는 장면을 포함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정당한 이유 없이 공격한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반대되어야 했다. 전세계의 정부들은 우크라이나에 군사 무기를 공급하는 것 외에도 러시아에 대항해 경제 무기를 배치했다. 군사력에 비해 경제력이 약한 러시아가 군사 무기의 사용 범위와 목표 지역을 확대함으로써 계속해서 맹공을 퍼부을 수도 있지만, 그건 세계가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다.

 

러시아의 무차별 폭격과 비교할 때, 경제 무기는 사람들을 그처럼 빨리 죽이진 않을 것이고 눈에 띄는 파괴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많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 대항해 배치된, 전례 없는 경제무기는 의심할 여지없이 고통을 가할 것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대한 제재는 이미 루블화 붕괴에 기여했고, 국경을 넘나드는 지급결제와 자금 조달에 대한 새로운 제한은 즉각 영향을 발휘해 러시아 은행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켰다. 러시아에 대한 무역제재(항공기 부품 등 공업생산에 필요한 핵심 자원에 대한 수출 제한은 물론, 러시아로부터 구매 제한)와 다국적 기업의 이탈은 즉각적인 효과는 덜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러시아의 경제성장을 감소시키고 실업률을 크게 증가시킬 것이다. 만약 이러한 조치들이 번복되지 않는다면, 러시아의 경제적 변화는 결국 러시아 국민들의 생활 수준을 하락시키고 그들의 건강 상태를 악화시키며, 더 많은 죽음을 낳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여기까지 우리가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은 광범위한 정치적 붕괴를 반영한다. 대다수의 강대국들은 권위주의적 통치자들이 이끌고 있는데, 그들은 국수주의에 기반하며 국제적으로 타협할 의지가 없으며 국내적 제약을 받지 않는 채 행동하고 있다. 만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침공이 처벌받지 않는다면,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국제적 도발은 불가피하게 더 많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문제가 되는 것은 국제 질서의 붕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임이사국(중국, 프랑스, 러시아, 영국, 미국) 중 누구에게도 맞서서 합법적으로 행동할 수가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무능은 국제 규범을 무시하는 강자에 대한 면책으로 이어진다. 더욱이 유엔이 군사적 대응을 승인할 수 있다고 해도, 핵보유국에 군사적으로 맞설 의지는 아마도 부족할 것이다.

 

경제 무기는 전세계가 통합됨에 따라 활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건 마비된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경제 무기는 공격과 야만성에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즉, 고통스러운) 문명화된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무기가 만들어낼 수 있는 위험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아무런 제약 없이 완전히 자유롭게 사용될 경우, 경제 제제 역시 대량살상무기다. 경제 제제가 건물을 무너뜨리거나 다리를 부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업, 금융기관, 가계 살림과 심지어 삶까지 파괴한다. 군사적 대량살상무기처럼 경제 제재는 책임 있는 자와 무고한 자를 가리지 않고 공격해, 무차별적으로 고통을 가한다. 그리고 경제 무기가 너무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면, 현대 세계의 번영을 가능하게 해준 세계화의 과정이 역전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우려가 있다. 우선, 경제 무기는 겉으로 보기엔 유혈 참사를 일으키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까닭에 이를 규율하는 규범이 부족할 수 있다. 그로 인해, 경제 무기를 남용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미국은 국제적으로 더 나쁜 정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쿠바에 대한 가혹한 제재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중국은 호주에 대한 수출을 제재했다. 이러한 중국의 조치는 COVID-19의 기원에 대한 호주의 요구에 대한 보복과 분명히 연관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걱정스러운 것은 기업에 대한 대중적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 국가에서의 사업을 중단하라는 이러한 요구는 정책 입안자가 의도한 것 이상으로 제재를 확대할 수 있다. 낙태나 기후 변화에 대한 정부의 입장 때문에 그 국가가 경제 전쟁의 대상이 되는 것을 상상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

 

무분별한 제재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 각 국가들은 보다 방어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대한 조치에 따라, 중국, 인도 및 다른 많은 나라들은 다음의 사태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만일 몇몇 국가가 그들의 자산을 동결하기로 결정한다면, 그들 자신의 외환 보유고(선진국의 부채)를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말이다. 달러나 유로화만큼의 유동성을 보유한 다른 자산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 국가들은 국경을 넘나드는 국가 간 기업 차입과 같이 준비금 보유를 필요로 하는 경제활동을 제한하기 시작할 것이다.

 

또한, 더 많은 국가들이 SWIFT[1]의 국제 금융 결제 메시징 네트워크에 대한 대한을 모색하기 시작할 수도 있다. 이는 잠재적으로 글로벌 금융 결제 시스템의 파편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민간 기업들은 정치적,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투자나 무역을 중재하는 데 훨씬 더 신중해질 수 있다.

 

이렇게 국가들이 경제 무기에 대한 새로운 대응책을 개발함에 따라, 제로섬(zero-sum)의 전략적 행동이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국가에서 언젠가 자산과 자본을 볼모로 잡으려는 속셈으로 외국 은행을 시장에 끌어들일 수도 있다. 반대로, 국가들은 그러한 위협에 대한 취약성을 줄이기 위해, 은행이 영업할 수 있는 곳을 제한할 수도 있다. 그 결과 불가피하게, 국가 간의 경제적 상호 작용은 줄어들 것이다.

  

 

경제 무기는 마비된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을 우회하여 전세계가 러시아의 침략 전쟁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경제 무기의 사용에 따른 위험은 장래에 새로운 안전 장치가 갖춰져야 할 필요성을 강력히 시사한다. 그렇지 않다면, 경제 무기는 세계 경제가 여러 작은 지역으로 분열되도록 하거나, 세상을 더 가난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특히, 경제 무기는 너무 강력해서 어느 한 나라의 손에 맡길 수 없다. 그렇기에, 경제 무기는 최소한의 합의를 전제로 할 때에만 사용되어야 한다. 더 많은 국가들이 참여할 때 제재가 더 효과적인 한에서, 합의에 기초한 메커니즘에 이미 경제 무기에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2차 제재의 위협은 이를 원치 않는 국가들로 하여금 협력할 것을 강요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요구사항은 자발적인 합의를 기반으로 해야 하며, 경제 무기가 더 파괴적일수록 요청되는 합의 수준은 더욱 광범위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경제 무기의 사용에도 차등이 있어야 한다. 침략 국가의 엘리트가 소유한 자산에 대한 제재는 시행에 있어 가장 높은 우선 순위를 가져야 하며, 대신 합의 수준은 가장 낮아야 합니다. 선진국 경제는 자신의 관할구역에 들어와 있는 어딘가에서 탈세, 횡령, 절도를 통해 모은 자금이 자신의 관할구역에 들어와 있는 걸 더는 외면하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제재를 용이하게 해야 한다. 반대로, 침략국의 통화를 평가절하하거나 해당 국가의 금융 시스템을 약화시키려는 움직임은 중산층 자유주의자들과 개혁 성향의 세력을 성난 민족주의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조치에 관해선 더 많은 숙고와 최대한의 합의를 요구해야 한다.

 

선진국 경제는 당연히 새롭게 발견된 자신의 힘에 제약이 가해지는 걸 꺼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세계 경제의 분열이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줄 것임을 인식해야만 한다. 더욱이 경제 무기에 대한 통제에 관한 회담을 갖는 것은 무너진 세계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보다 평화적 공존이 항상 더 낫다.

 

 

 

*글쓴이 소개: 라구람 G. 라잔(Raghuram G. Rajan)은 현재 시카고 대학교 부스 경영대학원(University of Chicago Booth School of Business)의 교수이다. 인도준비은행 총재와 IMF(국제통화기금)의 수석 경제학자를 역임했다. 최근 저서로 <The Third Pillar: How Markets and State Leave Community Behind(Penguin, 2020)>이 있고, 한국에는 <폴트라인 – 보이지 않는 균열이 어떻게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가(김민주송〮희령 옮김, 에코리브르, 2011)>가 소개되었다.



 

[1] 역자 주. 전자통신 체계를 통해서 각국의 주요 은행들 간의 상호 금융거래와 지불결제와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벨기에에 거점을 두고 있는 비영리 기관.

 

번역_Economic_Weapons_of_Mass_Destruction_RAGHURAM_G_RAJAN.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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