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서교인문사회연구실의 회원 W가 러시아에 왔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며칠 지내다 함께 침대칸 열차를 타고 페테르부르크에 갔습니다. 영하와 영상을 오르내리고 비바람이 불었습니다. 페테르부르크 여행의 마지막 날 우연히(사실은 화장실을 들르기 위해) 안나 아흐마토바 박물관에 갔습니다. 박물관은 폰탄카 강변에 있는 ‘폰탄니 돔(Фонтанный дом)’의 별채에 있습니다. 원래는 셰레메티예프 백작가문이 18세기 초반에 지은 저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혁명 후 소비에트 정권은 이 저택을 국유화해서 <18-20세기 귀족 및 농노 일상박물관>을 만들었습니다. 별채에는 아흐마토바의 세 번째 남편이었던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푸닌이 살았다고 합니다. 푸닌은 1949년 8월 26일에 체포되어 1953년 8월 21일에 수용소에서 죽습니다. 시에 아무런 관심이 없을 줄 알았던 W가 의외로 아흐마토바와 관련된 전시물들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푸닌과 아흐마토바가 살던 아파트의 현관에 걸려있는 코트를 보고 저와 W는 아흐마토바의 체격이 대단히 컸었구나 하고 놀라워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코트는 푸닌이 체포된 후 아흐마토바가 계속 그 자리에 걸어둔 것이라고 합니다.
아흐마토바 박물관 건너편 방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이오시프 브롯스키가 미국에서 살 때 작업했던 서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두었습니다.그리고 그 방의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아흐마토바의 포에마 「바닷가에서(У самого моря, 1914)」와 관련된 전시가 있었습니다. 벽에 붙어 있는 큐알 코드를 찍으면 일반인들이 포에마의 구절들을 낭송하는 영상으로 연결되는데 다음 구절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래에는 큐알 코드로 연결되는 해당 구절의 영상입니다)
Долго я верить себе не смела, Пальцы кусала, чтобы очнуться: Смуглый и ласковый мой царевич Тихо лежал и глядел на небо. Эти глаза зеленее моря И кипарисов наших темнее, - Видела я, как они погасли... Лучше бы мне родиться слепою. Он застонал и невнятно крикнул: “Ласточка, ласточка, как мне больно!” Верно, я птицей ему показалась.
한참을 믿지 못했어, 정신 차리려고 손가락도 깨물어 봤어. 까무잡잡하고 상냥한 나의 왕자님이 조용히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거야. 두 눈은 바다보다 초록빛이고 우리의 삼나무들보다 짙었어, 두 눈의 빛이 꺼져가는 걸 보았어... 차라리 내가 눈 먼 채로 태어났더라면. 그는 신음하며 알아들을 수 없이 외쳤어. “제비, 나의 제비야, 너무 아파!” 그러니까 내가 새로 보였나봐.
전시장의 이 구절들에도 ‘그런데 알고 보니’의 덫이 놓여있었습니다. '바닷가에서'라는 제목 때문에 저는 당연히 시의 배경이 항구 도시 ‘페테르부르크’인 줄 알았습니다. 모스크바에 돌아와 아흐마토바 작품집에서 이 포에마의 전문을 보는데 1연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모래에 노란 옷을 묻어두고 / ... / 바다 멀리까지 헤엄쳐 가 / 어둡고 따뜻한 파도 위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 뭍으로 돌아올 때 동쪽의 등대가 / 알록달록 빛났고 / 케르소네소스의 관문에서 수도승이 / 물었다. ‘한밤에 어디를 돌아다니느냐?’” 케르소네소스는 크림 반도 남서부에 존재했던 고대 그리스의 식민 도시라고 합니다. 사실 저는 큐알 코드 영상에서 보여줬던 구절을 꼼꼼히 읽지 않은 탓에 착각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삼나무보다 짙었어’라는 구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어로는 ‘사이프러스’라고 부르는 삼나무는 지중해를 비롯해 따뜻한 곳에서 자라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까무잡잡하고 상냥한 나의 왕자님’도 따뜻한 크림 반도에 있을 법 하지 북방의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찾기 어렵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W 앞에서 얼마나 큰 두 가지 착각을 했던지 쥐구멍으로 숨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저의 부끄러운 경험을 토로하는 까닭은 아흐마토바를 탓하기 위해서입니다. 시인 스스로 작품뿐만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자기신화화를 하려고 부단히 애썼기 때문입니다.[각주:1]그래서인지 순진한 외국인 독자인 저에게 그녀는 키가 매우 크고 페테르부르크 토박이에 소련의 핍박과 전쟁에도 꿋꿋이 살아남은 위대한 시인, 러시아의 고전학자 세르게이 아베린체프의 말을 빌자면 20세기 러시아의 운명을 애도한 ‘연대기편찬자(летописец)’이자 ‘곡쟁이(плакальщица)’[각주:2]로 남아있습니다. 특히 대작 「레퀴엠」을 직접 낭송하는 것을 들어보면 강세 있는 어절을 길게 끄는 웅장한 목소리 덕분에 이러한 이미지가 더욱 뚜렷이 각인됩니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흐마토바의 키는 실제로 180센티미터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아래에 있는 유튜브 링크에서 아흐마토바의 「레퀴엠」 낭송을 배경음악처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한편, 아흐마토바보다 세 살 어린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는 작은 체구에도 하고 싶은 말을 또박또박 당차게 외치는 악바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츠베타예바의 포에마 「끝의 시」에서 몇 구절을 옮겨보겠습니다. “방랑하는 우리 / 어부 형제들은 / 춤을 추지―울지 않아. // 술을 마시지―울지 않아. / 펄펄 끓는 피로 / 되갚아주지―울지 않아. // 진주를 잔에 담아 / 녹이고―세상을 / 호령하지―울지 않아.”[각주:3]실제로 츠베타예바는 163센티미터였다고 합니다. (작가들의 키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습니다. 저는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읽으면서 실제 의사로 일했던 이 사람은 작은 키에 한시도 쉬지 않는 바지런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2 아르신 9 베르쇼크, 즉 약 182센티미터였다고 합니다.)
말년의 아흐마토바가 직접 낭송한 「레퀴엠」
아흐마토바의 키가 컸다고 하니 푸닌의 커다란 코트를 그녀의 것으로 착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아흐마토바가 1952년 작가동맹 개인카드에 작성한 인적 사항을 보면 네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즉, 항목마다 모두 거짓을 적어 넣은 것입니다.
성, 이름 및 부칭 – 아흐마토바, 안나 안드레예브나; 필명 – 없음, 출생연도 – 1893; 출생지 – 레닌그라드.[각주:4]
첫째, 안나 안드레예브나 아흐마토바의 원래 성은 ‘고렌코(Горенко)’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안드레이 고렌코는 일찍이 딸이 시 쓰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며 딸을 가리켜 ‘데카당 여류시인’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버지는 딸이 진짜 성 ‘고렌코’로 시를 발표하지 못하게 했다고도 합니다.
둘째, 그래서 안나는 족보를 뒤져보았고 외가 쪽 증조할머니의 성이 ‘아흐마토바’였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주 힘 있고 근사하게 들리는 이 성을 필명으로 정했습니다. 평소 시인의 할머니는 자신의 가문이 이흐 칸국의 유명한 칸 ‘아흐마트(아흐메드 칸 빈 퀴치크)’에게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흐마토바’ 못지않게 ‘고렌코’도 아주 독특하고 강렬하게 들립니다. 슬라브 민속풍습에서는 나쁜 정령들이 어린 아이에게 달라붙지 못하도록 ‘슬픔’을 뜻하는 명사인 ‘고레(Горе)’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합니다. ‘고레’의 어원을 추적해보면 ‘태우다, 고통스럽게 하다’를 뜻하는 동사 ‘고레티(гореть<горъти)’[각주:5]가 있습니다. ‘맛이 쓰다’를 뜻하는 형용사 ‘고리키(горький)’역시 동사 ‘고레티’와 관련 있다고 합니다.알렉세이 페시코프가 일부러 ‘고리키’라는 형용사를 가져와서 ‘막심 고리키’라는 필명을 삼았던 것과는 반대로 귀족적이고 이국적인 필명 아흐마토바 뒤에는 '슬픔'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진짜 성 ‘고렌코’가 숨어 있습니다.
셋째, 안나 고렌코는 1893년이 아니라 1889년, 구력으로 6월 11일(신력으로는 6월 23일)에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다른 자전적 산문들에서는 출생연도를 옳게 적긴 하지만 자신이 태어난 해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고 강조합니다. “나는 찰리 채플린,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 에펠탑, 그리고 어쩌면 엘리엇과 같은 해에 태어났다. 이 해 여름 파리에서는 바스티유 감옥 습격 100주년을 기념하였다.”[각주:6]
넷째, 안나 고렌코는 레닌그라드, 즉 페테르부르크가 아니라 지금은 우크라이나에 속하는 흑해 연안의 도시 오데사에서 태어났습니다. 오데사는 당시 러시아 제국 헤르손스카야 도에 속하는 도시였습니다.
고렌코 또는 아흐마토바
아흐마토바는 이처럼 현실에서 자신의 전기를 ‘위조’ 또는 ‘창조’했습니다. 각각의 위조 사실들을 그녀의 시에 비추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함정과 두 번째 함정은 묶어서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안나’는 필명인 아흐마토바를 실제 성이라 말하고 필명은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시의 영역에서의 이름인 ‘아흐마토바’가 현실의 영역을 침범하고 현실의 이름인 ‘고렌코’의 자리를 찬탈하는 경우입니다. 즉, 예술이 삶을 압도하고 삶 대신 앞으로 나오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흐마토바는 대부분의 시에서 매우 사실임 직한, 아주 개인적인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마치 예술은 삶을 모방하거나 있는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라도 하듯 말입니다. 이장욱 시인은 그녀의 시들을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 “심지어 그녀의 짧은 서정시들을 이루는 언어들은 일기와 시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인다.”[각주:7]이 ‘머뭇거림’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아흐마토바의 초기작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시 한 편을 읽어보겠습니다.
Сжала руки под тёмной вуалью...
"Отчего ты сегодня бледна?"
- Оттого что я терпкой печалью
Напоила его допьяна.
Как забуду? Он вышел, шатаясь,
Искривился мучительно рот...
Я сбежала, перил некасаясь,
Я бежала за ним до ворот.
Задыхаясь, я крикнула: "Шутка
Всё, что было. Уйдешь, я умру."
Улыбнулся спокойно и жутко
И сказал мне: "Не стой на ветру".
8 января 1911
Киев
어두운 베일 아래 두 손을 꼭 쥐었다...
“오늘따라 왠지 얼굴이 창백하네?”
- 왜냐면 떫은 슬픔에 그를
잔뜩 취하게 만들었거든.
어떻게 잊을까? 그가 비틀거리며 나갔다
괴로운 듯 입이 일그러졌다...
나는 난간도 잡지 않고 달려 내려갔다
대문까지 그를 좇아 달려갔다.
헐떡이며 소리 질렀다: “장난이야
지금 있었던 일들. 떠나면 죽어버릴 거야.”
침착하고도 소름끼치게 미소 짓더니
내게 말했다. “바람 부는 데 서 있지 마.”
1911년 1월 8일
키예프
멜로드라마에 나올 법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멜로드라마와는 달리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 없습니다. 시적 화자인 여자는 아무 맥락 없이 대뜸 ‘어두운 베일 아래 두 손을 꼭 잡고’ 남자는 대뜸 여자에게 오늘따라 왜 얼굴이 창백하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그의 묻는 말 ‘왜’(옷토보, оттого)에 ‘왜냐하면(옷체보, отчего)’이라는 말로 대답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독백으로 말합니다. 다음 연에서도 ‘어떻게 잊을까?’라는 독백이 이어지고 그녀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신의 감정에 따라 해석합니다. 그가 정말로 술을 마셨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눈에 그는 ‘떫은 슬픔’에 만취해 ‘비틀거리고’ ‘괴로운 듯’ 입을 일그러뜨립니다. 다소 평범한 내용을 그리고 있는 듯한 이 시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여자주인공의 말과 남자주인공의 말이 번갈아 나오며 이루는 기하학적인 각운 구조입니다. 번역에서는 각운을 이루는 단어들을 각 시행의 마지막에 배치할 수 없었지만 이 단어들을 진한 글씨로 표시해 보았습니다. 이 단어들을 원문의 위치에 따라 종렬로 배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вуалью... 부알류
бледна?” 블레드나?”
печалью 페찰류
допьяна. 다피야나
шатаясь, 샤타야스
рот... 로트...
касаясь, 네 카사야스
ворот. 바로트
“Шутка ”슈트카
умру”. 우므루.”
жутко 주트카
ветру”. 베트루.”
베일...
창백하네?”
슬픔에
잔뜩 취하게.
비틀거리며
입이...
잡지 않고
대문까지.
“장난이야
죽어버릴 거야.”
소름끼치게
바람.”
1연에서는 겉과 속의 대립이 두드러집니다. 우선 ‘창백한’을 뜻하는 ‘블레드나(бледна)’는 남자가 겉으로 발화하는 말이고, ‘잔뜩 취하게’를 뜻하는 ‘도피야나(допьяна)’는 여자가 속으로 하는 말입니다. 또, 여자는 남자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베일’ 아래 두 손을 꼭 쥡니다. 이 ‘베일(부알류, вуалью)’은 ‘슬픔(페찰류, печалью)’과 각운을 이루어서 여자가 애써 슬픔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엿보게 해줍니다. 게다가 ‘베일’이라는 말 안에는 ‘슬픔’이라는 말의 일부, 즉 ‘-알류(-алью)’가 들어 있어 마치 베일이 슬픔을 보일락 말락 가리고 있는 형상을 이룹니다. 이처럼 겉과 속의 대립은 등장인물들의 대사 배치와 각운의 소리를 통해 물질적으로 축조됩니다. (왠지 베일이 보라색 아니었을까 싶어 슬픔을 덮은 베일, 즉 ‘부알류’를 보라색으로 표시해 보았습니다)
2연에서는 먼저 나온 각운이 시적 상황을 전개시키고 뒤에 나오는 각운은 이 상황에 맞게 선택됩니다. 특이한 점은 이 각운의 배치에 따라 1연에서의 겉과 속의 대립이 깨지고 등장인물들의 외적 행동, 특히 여자의 행동을 이끌어냅니다. 첫째, 남자는 ‘비틀거리며(샤타야스, шатаясь)’ 집을 나가고 그 때문에 여자는 슬픔에 북받쳐 난간도 ‘잡지 않고(네 카사야스, касаясь)’ 그를 좇아 계단을 뛰어 내려갑니다. 베일이 달린 모자를 손에 꼭 쥐고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은 채 ‘난간도 잡지 않고’ 뛰어 내려가는 그녀도 ‘비틀거리며’ 달려갔으리라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바로 일그러진 남자의 ‘입(로트, рот)’때문에 여자는 계단 난간도 잡지 않고 ‘대문(바로트, ворот)’까지 달려 내려나갑니다. 남자는 ‘떠나겠다’ 혹은 ‘이별하자’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입을 일그러뜨리는 제스처 하나로 여자를 극도로 불안하게 만듭니다.
마치 2연에서 다 하지 못한 말인 양 3연 첫 머리에는 ‘헐떡이며(자디하야스, задыхаясь)’ 라는 말이 나옵니다. ‘비틀거리며(샤타야스)’, ‘(난간도) 잡지 않고(네 카사야스)’와 유사한 소리 ‘헐떡이며(자디하야스)’는 2연의 잔향처럼 들립니다. 이처럼 앞 연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배경에서 갑작스러운 여자의 말이 전경이 됩니다. “장난이야.” 2연에서는 각운들을 통해 주인공들의 움직임, 즉 말을 대신하는 행동이나 제스처가 강조되었다면 3연에서는 주인공들이 겉으로 내뱉는 말들이 지배소가 됩니다. 사실 둘의 상황을 떠올려 보면 지금까지 여자는 남자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만 1연에서 한 마디 했을 뿐 여자는 슬픔을 삭이며 속으로 말하거나 슬픔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슬픔을 대하는 여자의 태도는 남자에게 직접 발화되지 못하고 각운이라는 시적 장치로만 음성화되었습니다.
3연에서는 여자가 드디어 직접 말을 합니다. 이때, 여자와 남자의 직접적 발화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3연에서는 대칭성이 가장 두드러집니다. 1연에서는 겉과 속의 대립이 있긴 했지만 여자는 한마디도 말하지 못했고, 2연에서는 여자와 남자 둘 다 행동으로 표현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행동에 반응할 뿐이었습니다. 3연에서는 비로소 둘이 ‘대화’라는 것을 합니다.
그런데 3연의 각운들은 1연, 2연과 다르게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의미들, 대칭적이지 않은 문법적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연의 ‘베일-슬픔’, ‘창백하네-잔뜩 취하게’, 2연의 ‘비틀거리며-(난간도) 잡지 않고’, ‘입-대문’ 에서 명사는 명사끼리, 수식어는 수식어끼리, 동사는 동사끼리 각운을 이룹니다. 한편, 3연의 ‘장난(슈트카, шутка)-소름끼치게(주트카, жутко)’, ‘죽어버릴 거야(우므루, умру)-바람(베트루, ветру)’ 에서는 의미적, 문법적 대칭성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칭적 ‘대화’라는 껍데기에 감추어져 있는 각운의 비대칭성은 두 사람이 하는 말들의 비대칭성도 낳습니다. 그리고 저로서는 풀지 못한 여러 가지 궁금증들을 낳습니다. 첫째, 여자는 왜 다급하게 달려 나가서는 ‘장난이야’라고 말했을까, 그리고 왜 장난(!)이라고 해 놓고서는 죽어버리겠다고 말할까. 둘째, 여자의 말을 들은 남자는 왜 ‘소름끼치게’ 미소 짓는 걸까. 장난이라고 해 놓고서는 죽어버리겠다는 말에 마음이 아주 식어버린 걸까. 셋째, 남자는 왜 “바람 부는 데 서 있지 마”라고 말했을까.
1연과 2연의 상황 전개는 두 사람의 대화적 구조가 없어도 건축적인 각운 구조 덕분에 상당히 안정적으로 보입니다. 마치 끼워 맞출 수 있는 홈이 나 있는 각운들로 집을 차곡차곡 세웠다고나 할까요. 3연에서 나타나는 여자와 남자의 대화는 각운들이 상황을 축조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세운 극적 ‘대화’라는 집은 전혀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시와 일기 사이의 ’머뭇거림’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일기에나 쓸 법한 일상적이고 내밀한 소재는 각운이라는 시적 장치를 통해 기하학적으로 재단됩니다. 기억나는 대로, 느끼는 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시의 종착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듯 마음의 안과 밖의 경계를 오려냅니다. 이 점에서 ‘아, 일기가 아니라 시였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시’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단어 하나하나 짜 맞추어 가며 읽다가 시의 마지막에 이르면 단어들의 설계도가 뒤엉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영문 모를 사적인 말들이 우다다 튀어나오는 바람에 읽는 사람은 ‘아니, 일기장에나 쓸 것을 왜 여기다 썼지?’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는 일기다!’라고 판정내리자니 ‘샤타야스’-‘카사야스’라는 대칭적 각운들이, ‘우므루-베트루’라는 비대칭적 각운이 머릿속을 맴돌아서 ‘아, 그래도 이건 시이겠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아흐마토바의 시가 ‘시와 일기’ 사이를 머뭇거린다기보다는 읽는 사람이야말로 이것을 시로 봐야 하나 일기로 봐야 하나 머뭇거립니다. 시라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알고 보니 일기였네. 일기였던 것 같은데, 소리 내어 읽어보니 시였네.
츠베타예바는 아흐마토바에게 바치는 시 「안나 아흐마토바에게」 (1915)의 네 번째 연에서 이 점을 아주 날카롭게 표현했습니다.
Каждого из земных
Вам заиграть - безделица!
И безоружный стих
В сердце нам целится.
땅에 사는 모든 이를
당신은 가지고 놀겠지요 – 심심풀이!
그렇게 무기도 없는 시(詩)가
우리의 심장을 겨눕니다.
결국 아흐마토바는 우리를 심심풀이로 가지고 놀았던 모양입니다. 다음번에는 나머지 두 가지 함정인 ‘생일 혹은 기념일’과 ‘레닌그라드’를 통해 그녀가 우리를 어떻게 가지고 노는지 살펴보겠습니다.
Черных В.А. Летопись жизни и творчества Анны Ахматовой. Часть IV. М., 2003. С. 87. 박선영(2013), 101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Крылов Г.А. [ГОРЕ]/Этимологический онлайн-словарь русского языка Крылова Г.А. [https://lexicography.online/etymology/krylov/%D0%B3/%D0%B3%D0%BE%D1%80%D0%B5] [본문으로]
박선영(2013), 100쪽. 박선영은 아흐마토바가 “‘어쩌면’이라는 단서까지 붙여가며 굳이 엘리엇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시인의 강한 자기신화화 경향을 강조한다. [본문으로]
이장욱 (2019), 『혁명과 모더니즘: 러시아의 시와 미학』, 서울: 시간의 흐름, 77쪽. [본문으로]